착한 아이보다 자기 색깔 있는 아이로 키우기
아들의 물리적 공간을 지켜주는 일은 사실 심리적 공간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요. 부모가 여유를 줄 수 있어야 아들도 자신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사춘기는 유년기와는 달라요. 무엇이든 부모님에게 기대어 해결하고 안정감을 찾던 때에는 부모님의 도움과 관심이 절대적이었어요.
그에 반해 사춘기는 ‘자아’를 찾아가는 시기예요. ‘혼자서’, ‘스스로’가 중요한 시기지요. 그래서 더더욱 아들에게 비어 있는 장소, 즉 공간(空間)을 주는 것이 중요해요. 아들이 이제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세요.
물론 아직은 경제적으로 관계적으로 부모의 손이 필요한 일들이 많아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아들이 알아서 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이제 부모 품을 떠나기 위해 채비를 하는 중임을 부모가 인정해줘야 하지요 <아들의 사춘기가 두려운 엄마들에게_이진혁 저>
늦은 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니,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아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커 보인다. 어느새 꼬마 같았던 아이는 자기만의 생각과 주장을 가진 청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어느 날, 아들과 아내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겼다.
"왜 엄마는 공감을 안 해주는 거야? 난 단지 내 말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데, 무조건 막기만 하잖아."
"너무 늦게까지 컴퓨터로 유튜브를 보지 말고 일찍 잤으면 해. 새벽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성장에도 좋지 않아. 그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차라리 일찍 자는 게 낫지 않겠니?"
"엄마, 나 인터넷 되는 휴대폰 자발적으로 반납했잖아. 친구들은 다 스마트폰으로 인스타도 하고 게임도 하는데, 나는 공신폰 쓰면서 불편함 감수하고 있어. 그 정도는 좀 인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숙제 다 하고 남은 시간에 유튜브 좀 보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스마트폰은 반납했지만, 컴퓨터로 늦게까지 유튜브 보는 건 똑같은 거 아니니?"
"그럼 온종일 공부만 해야 돼? 엄마는 내가 다른 애들보다 얼마나 자제하고 있는지 몰라. 난 다른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해 주길 바랄 뿐이야."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3년 전, 스마트폰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한 아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내 걱정 어린 말에 아들은 울면서 스마트폰을 반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터넷이 안 되는 공신폰을 사용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소통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약속을 지키는 아들이 대견하고 놀라웠다.
나는 아들과 약속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네가 원하는 전자기기 다 사줄게. 대학 가기 전까지 네가 신경 써야 할 것에 더 집중했으면 해. 대학 입학해서는 나쁜 짓만 아니면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그때는 네 시간을 마음껏 펼쳐봐. 대학에서조차 매일 공부에 빠져 세상을 놓치며 살지 않았으면 해. 학점이 부족해도 좋으니 너가 도전하고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 보았으면 해. 아빠처럼 넘 작게 보며 살아가지 않았으면 해. 아들아! 세상은 너가 봐야 할 것도 경험할 것들도 많단다. 그걸 느끼고 너의 색을 만들어 갔으면 해. 그때까지 너가 집중해야 할 시간을 쓸데없는 걸로 허비 안 했으면 해"
아직 절제력을 갖추기 어려운 나이임에도 아들은 스스로를 잘 컨트롤해 왔다. 이런 아들을 인정하고 응원해 주고 싶다. 하지만 아내와는 자주 의견 충돌이 생긴다. 문제는 바로 '공감'이다.
어느 날 방에 들어와 씩씩거리는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고 싶지 않을 거야. 자존심도 있고, 본인이 옳다고 믿는 관성이 있거든. 엄마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수 있어. 다만, 그런 말들이 너와 공감이 안 될 때 답답하겠지.
아빠도 엄마랑 그렇게 말다툼하며 살아왔어. 그런데 사람은 쉽게 안 바뀌더라. 그래서 말인데, 네가 엄마한테 논리적으로 네 주장을 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빠는.
성인으로 성장한다는 건 그런 거야. 네 생각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때로는 관철시키고 때로는 물러서는 과정. 사회에 나가면 엄마보다 더 고집 센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그럴 때 네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해.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속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인생은 가끔 불편해도 괜찮아. 네가 너답게 살면 돼."
지금부터 연습한다고 생각해. 아빠는 네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착한 아들이 아니라, 네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래. 네 주장이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중요한 건 네 의견을 당당히 전달하는 거야. 아들, 넌 이미 의젓한 사람으로 자라고 있어. 아빠는 너를 많이 응원한다. 당당히 엄마의 의견과도 대립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서 좋다."
자신의 생각과 논리가 형성된다는 것은 성인이 되어간다는 증거다. 늘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보다는, 자신만의 색과 멋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게 더 중요하다. 부모 말에 무조건 '예스'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길 바란다.
"사람이 변하는 건 어느 한순간이 아니야. 조금씩, 매일매일. <이태원 클라쓰 드라마 중>
부모는 늘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갈까 봐 노심초사한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기에 더 조심스럽고, 더 통제하려 든다. 부모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의 어려움이 존재하기에, 아이는 당당하게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연습하며 키워가야 한다. 성인이 되어 갑자기 형성되는 게 아니다.
아들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답답해하기보다, 엄마와 부딪히며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모습이 오히려 바람직해 보인다. 답답함이 쌓여 폭발하는 것보다, 일상 속에서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다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그렇게 자라 가는 아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낀다.
행복을 찾으려 멀리 갈 필요 없다. 지금 이 일상이 행복이다. 작은 순간에서도 기쁨을 찾으려 한다.
아들아, 아빠는 네가 네 색깔을 만들면서 너로서 성장하길 응원한다. 살아가며 힘든 상황에 놓일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럴 때 너 주변에 부모님이 없다하더라도 너의 멋과 색으로 버티고 이겨나가길 바란다. 그런 너의 모습을 언젠가는 하늘에서도 바라볼 수도 있지만, 그 모습을 늘 사랑하고 응원할 것이다.
사춘기에는 지치고 힘들 때가 없을 수는 없어요. 그때마다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이나 동영상을 찾아서 한번 보세요. “아빠!”, “엄마!”를 부르면서 배시시 웃어주던 모습, 가만히 있어도 귀엽기만 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릴 거예요.
사실,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부모에게 이미 많은 기쁨을 선물했어요. 아마도 그때까지 자기 할 일은 다 한 것일지도 몰라요. 부모의 행복지수를 많이 올려줬으니까요. 그때 대출받은 행복의 이자가 사춘기에 감내해야만 하는 약간의 흔들림인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흔들릴 때는 처음 그때로 돌아가서 마냥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웠던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깊은 밤, 아들의 방에 들어가서 잠든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세요. 여전히 그때 그 모습의 아들이 보일 거예요.
사춘기라서 변한 건 어쩌면 아들이 아니라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 마음을 찾는다면 사춘기 아들도 조금은 달리 보일 거예요. 그래서 초심을 찾게 도와주는 어릴 적 사진과 동영상은 사춘기 부모의 필수품이에요. <아들의 사춘기가 두려운 엄마들에게_이진혁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