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가는 길이었다. 멀리서부터 아침을 깨우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크고 선명해진다. 작은 텃밭을 경운기로 밭갈이를 한다는 알림이었다. 아침 해가 뜬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도시의 하루가 여느 때보다 늦게 시작되는 토요일이었다. 한겨울에도 참고 견디어 파릇파릇 돋아난 양파와 마늘, 시금치가 푸릇한 향기를 뽐내고 있다. 주인이 누군지 모를 그 밭에는 이제 땅을 갈아엎어 새 농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삼십 분 남짓 매일 가는 코스를 다 돌고 올 무렵에도 ‘탕탕 타당 탕탕’하는 그 소리가 이어졌다. 어릴 적 매일 듣던 그 소리를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고 찡하다. 이 무렵이면 땅을 생명처럼 여기는 농부의 나날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절이었다. 봄 햇살은 바쁜 마음을 더 부지런하라고 일렀고 아침에서 저녁까지 밭에서 살았다.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지났다. 땅에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만큼의 결실이 뒤따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봄에는 항상 희망이 싹텄다. 작년보다는 올해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은 흙을 다져 땅을 튼튼히 하는 일에서 출발했다.
도시에 살아가면서 흙에 지극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잠시 스쳐가는 도로변 아주 작은 땅을 일궈내는 어르신들이다. 처음에는 어찌 저런 자투리땅에 무엇을 심을까 하는 생각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그곳에서 돌을 일구고 거름을 하고, 김을 매고 있었다.
호미를 들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땅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사뭇 진지한 얼굴에 열과 성을 다해서 하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등은 굽었고 몸이 원하는 만큼 말을 듣지 않는 까닭에 행동은 느렸지만, 천천히 쉼 없이 이어갔다.
작년에는 고구마와 마늘, 완두콩, 상추를 심었다. 어찌나 정성으로 가꾸는지 모른다. 학원 광고 플랫 카드천을 어디서 구했는지 방풍 삼아 의지할 곳 없는 그 밭을 탄탄히 감쌌다. 그런 탓인지 올봄에도 밭은 초록 물결이 넘실댄다.
이곳만이 아니다. 무엇을 심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오면 사람들은 밭을 일군다. 대부분은 50~60대를 훨씬 넘긴 노인분들이다. 덜컹거리는 수레에 무언가를 싣고 아침이면 그곳으로 향한다. 변변한 수도 시설도 마련되지 않는 까닭에 빗물을 고무통에 받아서 쓰거나 집에서 담고 간다.
“저분들은 예전부터 일하셨던 분들일 거야. 나이가 들었다고 집에 들어앉았지만 답답하잖아. 조금씩 움직이면 뭣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자식들도 나눠주고 몸을 움직이니 건강해지고. 그 재미지.”
어느 날 함께 운동을 다녀오던 이웃 언니가 노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건넸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난 다음 날 밖으로 나가면 전해오는 흙냄새의 싱그러움을 잊을 수 없다. 여기에 풀냄새와 나무 향이 함께 어우러져 절로 마음이 깨끗해진다. 콘크리트 벽 안에 몸을 뉘어 반복되는 하루는 누구에게나 힘들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반겨주는 곳, 해야 할 일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텃밭은 하루를 보낼 즐거움을 주는 놀이터 같은 곳인지도.
텃밭은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하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닌 폭신한 흙에 발을 붙이고 움직이다 보면 그동안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한 잡념들이 사라진다. 머리는 맑아지고 몸은 한결 가벼워진다. 수십 년을 써온 무릎과 허리와 손과 발이 아파트 담벼락 안에서는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어야만 좀 살 것 같지만, 이곳에서는 서서히 아픔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흙을 친구 삼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보면 몸이 살아나고 자유로워진다.
땅에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과 닮았다. 조그만 땅에 심을 게 많으니 적절히 구역을 나눈다. 시기별로 파종하는 것들이 다르니 어렴풋이 들어왔던 농사법을 적용해 본다. 경험이 없다면 이웃의 텃밭 주인에게 물어봐도 괜찮은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둘은 친구가 되어 있다.
늘어가는 텃밭의 주인들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에 사는 나이 지긋한 이들이다. 마음 둘 곳을 찾기 위한 갈증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 봄이 깊어질 무렵이면 상추와 싱싱한 채소들을 통해 수확의 기쁨을 얻는다. 잊었던 젊은 시절, 찬란했던 시절이 살아나는 순간이다.
땅에 진심을 심는 사람들, 조금의 공터도 허락하지 않고 몸으로 밭을 일구는 어르신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지 먹거리를 키워서 식탁에 올리는 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살아간다는 건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텃밭은 살아있음의 고마움을, 해야 할 일이 있는 소박한 삶터였다. 매일 밭으로 출근하는 이웃 할아버지의 낡은 자전거가 오늘도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