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밴에서 하룻밤
봄날의 약속을 꺼내는 날이다. 설렘보다도 바쁜 아침이었다. 바람이 부는 4월의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싶어지는 늦은 오후 친구들과 카페에서 뱅쇼를 마셨다. 얘기는 과거와 현재의 다리를 오가며 2년이 다 되어가는 겨울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방장산 휴양림에서 잤던 때 정말 좋았죠. 추웠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리 다시 가요.”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어렴풋한 계획을 나눴고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다. 저 멀리 가물거릴 무렵 캠핑장으로 가는 그날이 왔다.
어제 아침부터 비가 오다 늦은 저녁에서야 개었다. 엄마가 집을 비운다는 건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내 일이 시작되었다. 메추리 알을 삶아서 돼지고기 장조림을 만들고, 김치전도 한 접시 해 두었다.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한 반찬이 마련됐으니 신경 쓰일 일이 없다. 3시에 친구 둘이 찾아왔다. 올 거라고 기대했던 또 다른 이는 사정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했다. 그림책 읽기를 위해 만난 지 4년이 다 되어 가는 동무들이다.
집에서 자동차로 십 분 거리에 있는 캐러밴 캠핑장에 도착했다. 9호실 루비라고 적힌 열쇠를 받아 들었다. “와 좋다.” 모두의 합창이다. 가방을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봄날 빛나던 벚나무에는 붉은 열매가 검은색으로 익었다. 보도블록 위에 떨어져 잉크처럼 흔적을 남긴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초록 나무들 인사를 받으며 천천히 걸었다. 손에는 미지근해진 작두콩 차가 몸을 감싸준다.
한 달이라는 만나지 못한 시간만큼의 이야기가 천천히 흘렀다. 한 친구는 아이가 아파서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한 병명을 몰라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속 탔던 차에 관련 전문의를 만나 희망을 품고 치료받게 되었다 했다.
그는 언제나 활력 넘치며 유쾌하고 솔직하며 숨김이 없다. 힘이 쭉 빠진 채로 그를 만나도 급속 충전될 것 같다. 나였다면 너무나 심각했을 것들을 단숨에 이야기한다. 그동안 힘든 시기를 견디어 내어 마음 근육이 단단해졌나 보다.
동물원이 바로 옆에 있어 오랜만에 코끼리를 만났다. 조금은 높아 보이는 언덕을 걸어 올라서 코끼리 사에 이르렀다.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코끼리 눈이 왠지 슬퍼 보이지 않아?”
친구의 말처럼 정말 그랬다. 미뤄 짐작할 뿐이지만 좁은 공간에 대해 답답함이 전해졌다. 아이들과 대여섯 번 이상 왔던 곳이지만 혼자 바라보니 자세히 보였다. 거대한 몸으로 땅을 내딛는 모습이며 표정만으로도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걷고 또 걸었다. 속도가 느껴지지 않는 서두를 일이 없는 산책이었다. 종종 저녁을 마치고 집 주변 공원이나 아파트 주위를 걷지만, 그때는 시간과의 경쟁이었다. 30분 내로 전력을 쏟아서 돌아야 하는 나만의 힘겨운 레이스일 때가 많다. 그래야 운동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날은 혼자가 아니라 양옆으로 든든한 이들이 있다. 상쾌함을 가득 담은 나무 향이 정신을 깨워주었다.
저녁 식탁은 조촐했다. 너무 간단해서 먹을 게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스쳤지만 기우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동네 축협매장에서 삼겹살과 육전을 만들 소고기 우둔살을 한 팩 샀다. 숯불을 피울 계획이었지만 연기와 화력이 별로라는 친구의 말에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딸린 불판을 쓰기로 했다.
고기를 굽는 시간 동안 육전을 미리 만들었다. 항상 배려가 몸에 밴 언니가 키친 타올로 핏물을 빼고 허브 소금으로 밑간 해 두었다. 그다음은 내가 나설 차례다. 밀가루와 달걀 물을 입혀 지져냈다. 집에서는 정신없는 과정이 넓은 곳에서 하니 순간 뚝딱이다. 옆에서는 삼겹살이 익어간다. 자색 양파와 팽이버섯도 함께다.
맥주 캔 3개를 들고 건배했다. “이거 식기 전에 먹어요. 여기 고기도 있으니까.”
서로를 챙기는 말이 오간다. 집에서 조금씩 챙겨 온 시골 상추와 고추, 양파 절임, 김장김치에 쌈장까지 더해지니 한상 가득했다.
육전은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맥주가 잘 들어간다. 어느새 얼굴을 불그레 졌다. 다들 맛있다고 난리들이다. 처음에는 밖으로 나와서 저녁을 먹을 것인지 포장 음식으로 대신할 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매일 삼시세끼를 고민해야 하는 주부들이기에 밥은 벗어나고픈 일이었다. 그럼에도 밖에서 먹는 삼겹살 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지만 최고의 선택이었다.
마지막은 김치볶음밥이 장식했다. 불판 위에 갓 지은 흰밥과 김치, 상추를 썰어 넣고 밥을 볶았다. 꿀맛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다. 화려하지 않아서 마음 가는 밥상이었다. 이 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것이 나를 채워주었다.
집이 아닌 이곳으로 모이게 한 건 공간에 대한 갈증이었을까? 함께였지만 어색하지 않은 편안한 혼자의 시간이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신을 챙기면 그만이었고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았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움이었다.
밤은 깊어간다. 한마디 한마디, 서로의 말이 스쳐 지나지 않는다. 셋이 모였으니 한마디가 세 가지의 이야기로 퍼져나간다. 친구가 가져온 카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은’ ‘자신의 능력은’ 카드가 던지는 질문에 따라 이야기가 줄줄이 달린다.
어느 지점에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엄마와 아빠의 보호 아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지금도 그때가 선명하다. 맏언니 격인 그의 아버지는 몸이 약한 딸이 염려되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학교에 데려다주었고, 동갑인 다른 이는 멀리 떠나 일을 하는 아버지가 집에 오면 자식들에 대한 마음 씀이 지극했다고 했다. 나 역시 아버지는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며 든든한 의지의 대상이었다.
그와 반해 어머니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가족의 생활을 위해서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억세게 일했던 여장부였다.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 이전에 바쁘고 거침없던 엄마의 모습만 남았다. 아이를 잘 키워내고 가정을 일으켜야 한다는 무게가 모든 걸 빨아들였던 것일까. 이상하리만치 엄마의 모습은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묘한 공통점을 지녔다.
그리고 다시 지금에 머물렀다. 엄마였기에 아이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기말고사에 대한 것,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들에 대해 오갔다. 서울대 의대를 보낸 열혈 엄마의 경험담이 회자됐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특별했다. 6월 셋째 주 금요일 저녁은 집에 있지 않았다. 함께 얼굴을 마주 보고 부엌이 아닌 캠핑카에서 머물렀다. 저녁 7시를 훌쩍 넘긴 시간부터 시작된 이야기 꾸러미는 자정을 훌쩍 넘겼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토요일 새벽, 2시 반이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잠 자기가 싫다. 몇 시간 후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주저된다. 풀벌레 소리가 잔잔한 배경 음악이 되어 위로한다. 하루살이가 안으로 들어오려 방충망에 다닥다닥 붙었다. 그 작은 것들이 듣기에도 우리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가 있었나 보다.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보폭을 맞춰 걸으며, 먹으며, 얘기하며 여름의 숲만큼이나 서로에게 깊어갔다. 꾸미지 않은 우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