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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ug 30. 2022


기대라는 이름의 식빵 푸딩  

힘든 날 버티게 해 주는 작은 선물


      

어떤 바람은 힘든 시기를 보내는 힘이다. 어른들의 일도 그러하지만 아이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불편한 수업이 있는 날에는 학교 가는 길도 버겁다 느껴진다. 하기 싫어도 머물러야 하고 그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 싫을 때가 있다.     


이런 날은 그때를 보내고 나면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게 필요하다. 그것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한때를 보낼 힘을 얻기 때문이다. 아이가 싫어하는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이는 다른 때 보다 더 늦게 깨었다. 늦잠 자는 일이 예삿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집에 머물고 싶은 마음 같다.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투덜 되었다. 

“오늘 음악줄넘기도 혼자 가야 하고. 가면 아는 친구도 없어서 재미없는데 ….”

아이에게 학교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찾아왔다. 

“학교 갔다 오면 식빵 푸딩 만들어 줄게. 그거 맛있잖아. 다 지나갈 거야.”

아이에게 살짝 간식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ㅜ반가운 소식인지 아이 얼굴에 살짝 미소가 스친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동안의 내 경험을 빌려온다. 맛있는 음식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울한 마음에 효과가 좋다. 기다리고 있으면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먹고 싶던 무엇을 먹는 일은 그동안의 수고로움에 대한 강력한 보답이 되어 돌아왔다.     


동네 카페에서 먹는 케이크 한 조각도 그랬고 시골 한적한 곳에 있는 카페를 찾아가서 브런치를 먹기도 했다. 나를 위한 것.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에 두었던 일을 실행해 옮기는 일은 그동안의 노고를 잊게 한다.     

고구마 식빵 푸딩

식빵 푸딩을 만드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한동안 종종 만들어 먹다가 몇 년 동안은 잊고 있었다. 아이가 며칠 전에 얘기를 꺼내놓기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음식에도 유행이 있는 것처럼 특정 시기에 부지런히 만들다 한동안은 생각에서 사라진다.      

겨울이면 고구마와 함께 자투리 식빵 조각을 조각내고 함께 오븐에 구웠다. 계란과 생크림을 섞고 꿀을 더해 구우면 촉촉하고 부드러운 푸딩 완성이다. 생크림 대신 우유를 사용해도 된다. 추운 날 따뜻한 푸딩은 따뜻하게 속을 든든히 채워준다. 달콤함은 가라앉은 기분을 상승시키는 효과까지 있다.    

 

비가 오다 개었다. 땅을 아주 조금 적실 정도였기에 주위 공기는 더 습하다. 찐 고구마를 썰어서 올리고 통밀 식빵에 며칠 전 먹다 남은 마지막 빵 한 조각을 썰어 넣었다. 계란 하나와 우유에 꿀을 넣고 잘 저어주고는 에어프라이에 190도로 10분 정도 구웠다.     


“아 힘들다.”

피아노 학원까지 끝낸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선다.

“아침에 말한 푸딩 만들었어. 언니랑 먹고 기운 내.”

아이에게 약속을 지킨 것 같아 혼자 뿌듯하다. 지나고 나면 정말 별일이 아니지만, 그 순간에 매몰되면 작은 일도 큰일이 되어 다가올 때가 많다. 아직 초등생인 아이에게 중년이 되어 알게 되는 이런 말은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얼마 전에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중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아이가 고민을 얘기할 때마다 뭔가 답을 주고 싶은데 뾰족한 수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가끔은 나도 아이의 가슴속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 속상하다. 이제야 조금 알게 되는 것들이지만 모든 게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저 묵묵히 들어줄 넓은 가슴을 가진 엄마였으면 좋겠다. 변덕 없이 언제나 그저 “그래”라고 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종종 내 감정이 들어가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다음엔 푸딩 말고 무엇으로 아이의 마음을 감싸 줄 수 있을까? 내게도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간 푸딩이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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