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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Nov 22. 2024

엄마, 뽀뽀해 주고 가야죠

"여기다 해야 하나? 아니... 여기다?"


웃음을 참아가며 아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다.


가족 운동 시간이었다.


모두가 거실에 모여 준비 운동을 하고 나면, 집안 곳곳을 각자 운동 구역으로 나누어 놓고 운동 패턴에 따라 정해진 동작을, 정해진 시간만큼 하고는 제각각 뿔뿔이 흩어지는 식이다. 


운동을 먼저 끝내고 가는 아들은, 내가 운동을 마칠 무렵이면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이기에, 내게 취침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그냥 인사도 아닌 뽀뽀 인사, 굿나잇 키스를 하려고.


고등학생 아들이 엄마에게 뽀뽀를 해주다니 얼마나 다정다감한 일인가.


문제는 내가 운동 중이라는 점.


나는 40분 동안 집중적으로 근력 운동을 한 뒤 20분 동안 요가와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한다. 하필, 이 마무리 동작 중에서도 '어깨서기 자세'와 '쟁기 자세', '귀로 무릎 닿기 자세'를 연이어하고 있을 무렵,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집 남자들이 하나씩 내 운동 구역에 나타나곤 한다. 


뭔 구경거리라도 생겼다 싶어서인지.


자기들 같으면 감히 흉내도 못 낼 고난도 동작을 해내는 나의 능력에 박수를 쳐주지는 못할 망정, 이 남자들은 내 꼴이 우스꽝스럽다며 놀려댄다.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동작을 하는데도 말이다.



"저기 엄마 엉덩이에다 하면 되겠네. 아니 아니, 저기 발바닥에다 하든지."


머리와 팔, 다리가 괴상하게 얽힌 자세를 취한 내 몸 어디에다 뽀뽀를 할지 고민하는 아들을 거들어 준답시고 남편이 한 말이다.


마음의 평정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어찌 요가 동작이 되겠나. 


안 그래도 어깨서기 자세에서 쟁기 자세로 넘어갈 무렵 다리를 성급하게 내리기라도 하면 복부가 당겨서 힘들어지니 조심해야 할 판에, 옆에서 이렇게 떠들어대면 집중이 되겠나. 아들은 킥킥거리며 웃고 남편은 엉덩이에다 뽀뽀를 하라고 놀리고 (영어 표현의 Kiss My Ass는 아니고), 운동이 아닌 고문이다. 어쩐지 이 동작을 할 때마다 속이 쓰리더라고.


한 집에 살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치는 관계인데, 우리 가족은 매번 얼굴을 대할 때마다 '안녕'이라 소리 내어 인사하고 최소 하루 두 차례는 뽀뽀로 인사를 나눈다.


등교를 하느라 오전에 가장 먼저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뽀뽀하고, 그다음으로 출근길에 나서는 남편에게 뽀뽀, 잠자리에 들기 전 또다시 아들에게 뽀뽀, 부부끼리도 뽀뽀. 


맞다... 

지금처럼 운동할 때가 아닌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의 방에서 뽀뽀 의식을 가지던 시절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영국 전역에 휴교령과 외출 제한령까지 내려지자, 일부 직업군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사실상 집에서만 24시간을 보내면서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우리 부부가 함께 다니던 헬스장은 발을 끊어야 했고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들에게는 체육 시간이 없어졌기에, 가족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건강을 유지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임시방편으로 집에서 운동을 해보자고 내가 제안했던 이유다. 


다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운동임에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어설픈 방식이나마 가족 모두가 적응해 버렸다. 이후 아들은 학교로 돌아가 체육 수업을 받게 되었고,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 부부도 다시 헬스장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운동할 수 있음에도, 모두가 집 운동을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운동 도중 아들의 뽀뽀를 받는 일도 그렇게 일상으로 굳어졌다.


영국에 살면서 느낀 한국과 영국의 가장 큰 문화적 차이라고 하면 애정 표현 방식이다. 할리우드 영화 장면처럼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거리낌 없이 키스를 나누는 모습은 영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은 동성 연인 간 키스도.


영국인에겐 키스가 생활이니까. 


연인이나 부부는 말할 것도 없고 친구와 회사 동료, 국가 정상끼리도 공개 석상에서 볼키스를 나누며 인사를 한다. 부모와 자식 간 애정 표현도 당연히 자연스럽다. 


이런 영국 분위기에 영향받았다 수도 있고, 아기 시절 아들에게 해주던 뽀뽀 습관을 - 아들이 거부하지 않길래 - 지금껏 유지했다 할 수도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들의 침대 곁에서 서로의 볼에다 해주던 뽀뽀를 이제는 운동을 마친 아들이 운동 중인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해준다는 점이다.


애정 표현이 자유로우니 아들과의 대화도 자유롭다.


밥을 먹으며, 등하굣길을 걸으며, 동네를 산책하며, 낯선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언제든 기회만 되면 아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특별한 주제 없이도 둘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니까. 그러다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지만.


아들이 사춘기를 경험하고 친구와 갈등을 겪거나 학업에 대해 고민할 때, 부모 자식 간 의견이 충돌할 때,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위기를 맞이하였지만, 상당수의 문제를 대화로 해소했다. 끈끈한 애정 표현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아들과의 대화가 완벽하다 할 수는 없어도 조금 수월했다 할 수는 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뒤 집을 떠나고 나니 이런 뽀뽀 기회가 없어져 서글프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아들에게 보낼 편지와 소포 겉봉에다 이렇게 적어 보냈다. 


학생에게 배송되는 모든 우편물은 일괄적으로 학교 우편물 보관소에서 관리하는데, 보관소라고 해봐야 칸막이가 쳐진 작은 책장을 모아 놓은 곳에 불과하다. 이 보관소 공간을 출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용물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의 장난기가 발동하여 적어 보내긴 하였으나 이를 알아보고 내 아들을 놀려줄 사람이 별로 없어 아쉽긴 하다.




냄비에다 뭔가를 넣고 한참 삶고 있는 중인데 아들이 자러 간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냄비에 물이 끓어 넘칠 것 같아 빨랑 부엌으로 돌아가려고 아들에게 잘 자라는 인사만 하고 후다닥 뛰어가려 했더니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엄마, 뽀뽀해 주고 가야죠!"


앗, 미안 아들.


커버 이미지: Photo by Ivan Samkov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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