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가 우리를 살렸다

40대에 찾아온 위기

by 김자유

2022년 여름이었다. 지구 반대쪽 뉴질랜드는 겨울이었다. 그 겨울에 6년 만에 다시 조이 언니를 만났다. 1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돌면 여름에서 겨울로 올 수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지나간 6년의 시공간도 모두 뒤틀려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언니는 40대 중반으로 학원 사업을 정리하고 뉴질랜드 이주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30대 중반에 세 살 아이를 키우는 영어 강사였다. 그리고 6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언니는 고학력 무직이었고 암 환자였다. 수술을 한 지 3일 후였다. 나는 별거 후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몸무게는 이십 킬로 가까이 불어 있었다. 우리는 게걸스럽게 우리의 삶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6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때로 웃고, 울면서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처음 만난 20대, 30대의 이야기부터 하나씩 꺼내 놓고 햇볕에 말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후 3년 동안 멈추지 않았다. 내가 이혼 도장을 찍은 날, 인주가 마르기도 전에 나는 법원을 나와 언니와 통화를 하며 울었고, 언니는 ‘고생했다’고 말했다. 오십이 넘은 언니는 이민 법무사 과정에 도전했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첫 시험들을 통과했을 때, 나는 언니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내가 첫 책을 완성했을 때, 언니가 사업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을 때, 내가 드디어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 언니가 암과 섬유근종을 딛고 6km 달리기를 완주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도, 우리는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2025년 뉴질랜드의 여름이 왔다. 2주 후 한국의 겨울로 돌아가기 전, 나는 언니와 카페에 앉아 4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의 가장 큰 성취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의외의 답에 도달했다. 우리가 일궈낸 사업도, 유튜브도, 책도 아니었다. ‘생계’였다. 때로 달려야만 속이 풀리고, 울어야만 넘어가지는 순간들을 지나, 각자 아이들 키우면서 살아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성취였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우리는 둘 다 위기 속에 있었다. 시간은 거짓말같이 흘러, 금세 나는 그때 언니의 나이가 되었고, 언니는 또 저만치 달려갔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랐고, 하루하루는 생각보다 사소했다. 돌아보니 그 별거 없는 하루들이 쌓여 우리의 삶이 되는 동안, 우리가 우리를 살렸다는 것만큼 큰 성취는 없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