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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의 친구와 손잡고, 자기 계급을 배반하지 않으며

영화 〈베일리와 버드〉

by re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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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영화에서 어지러울 정도로 흔들리는 핸드헬드로 찍은 장면은 주로 열두 살 베일리가 어딘가로 이동할 때 등장한다. 헐레벌떡 뛰어가는 베일리의 급박한 상황 인식과 감각을 대변하는 것일 테다. 베일리는 아직 어리지만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언더클래스 가정의 일원이자 이제 곧 어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베일리는 막 초경을 시작했다)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브래디 미카코의 책 《밑바닥에서 전합니다!》에 따르면, 언더클래스란 영국에서 기존의 최하층인 노동자 계급보다도 아래에서 국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화는 언더클래스가 주인공으로 나온 여러 수작이 익히 보여준 장면들의 연장에서, 서로 다른 문제가 복잡하게 엉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언더클래스의 면면, 특히 그중에서도 베일리의 고난을 생생하게 전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리는 베일리를 담아내는 카메라는 종종 울렁거릴 정도로 흔들리는데, 이 흔들림은 모든 성장기 어린이의 내면이기도 하거니와 울퉁불퉁한 길 위를 우격다짐으로 버티며 나아가야 하는 언더클래스의 실존적 은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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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베일리가 감당하기에 그리 녹록지가 않다. 또 한 번의 결혼을 앞둔 아빠, 늘 폭력적인 애인을 달고 사는 엄마와 그런 엄마 밑에서 불안에 떠는 동생들, 여자 친구가 임신해 스코틀랜드로 떠나려다가 실연당한 후 눈물짓는 오빠……. 베일리는 종종 철창 아래서 하늘을 나는 새를 촬영하고, 나비가 노니는 걸 조심스레 관찰한다. 부모님 이혼 후 두 곳을 오가며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베일리는 여러 제약에 갇힌 자신과 달리 새와 나비는 자유롭다고 생각해 부러워하는 듯하다.


새에 대한 부러움은 베일리가 어느 날 마주한 버드라는 남자와의 우정을 통해서도 다시금 형상화된다. 버드는 거처 없이 떠도는 남자로 어릴 때 헤어진 가족을 찾는 중이다. 버드는 곧잘 베일리 집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서서 가만히 베일리를 쳐다본다. 그는 주로 난간 위를 오가는 중이거나 난간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기이하게도 불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마치 새처럼 편안해 보인다. 베일리는 버드와 함께 자기 가족의 문제를 대면하기도 하고, 그의 가족을 찾는 데 도움도 주며 점차 우정을 쌓아 나간다. 베일리와 버드가 닮은 것이 많다는 점도 우정의 이유다. 두 사람 다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낀 적이 있고, 남들과 다른 외양으로 괴짜 취급을 받을 때가 있다. 베일리는 여자인데도 남자아이처럼 씩씩하고 반항의 의미로 머리를 짧게 깎았고, 남성인 버드는 종종 치마를 입는다. 두 사람은 점점 더 깊게 서로에게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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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종반부, 버드가 베일리가 상상적으로 구성한 초현실의 친구였다는 점이 드러난다. 엄마와 동생에게 폭력적으로 구는 남자와 몸싸움을 벌이는 버드의 몸이 점차 새로 변한 이후부터다. 버드는 그 남자를 붙잡고 먼 하늘로 날아가고, 이후 베일리가 짜증 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와중 조용히 찾아와 그녀를 안아준다.


버드와 베일리가 닮은 것은 버드가 베일리를 투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버드가 위기의 순간 초현실적 존재로 거듭난 것은 베일리가 자신 역시 어려움의 순간에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잔뜩 엉킨 문제를 어느 정도 풀어내고 마침내 웃음 짓는 베일리를 버드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건 베일리의 분신인 버드 역시 베일리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괴짜이자 버림받은 아픔을 공유하며 내면에 강한 힘을 품은 둘이면서 하나인 존재와의 우정을 통해 베일리는 무사히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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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영화의 전개가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영화는 독특한 리듬감과 상상력으로 점차 몰입감을 높인다. 무엇보다 베일리가 언더클래스의 세계를 버리고 떠나 행복을 쟁취하지 않는다는 게 좋았다. 자기가 성장한 세계가 문제투성이일지라도, 그 세계를 타자화‧대상화하지 않고 바로 그곳에 단단히 발 디디고 서서 성장과 변화를 도모하는 태도가 인상깊었다. 베일리는 버드의 힘을 빌려 나 혼자 좋은 곳으로 가지 않았다. 삶을 나눈 가족, 친구들과 함께 부대끼며 행복에 다다랐다. 베일리는 앞으로도 자기 계급에서 ‘탈출’하지 않고 연대하며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버드의 도움 없이도 강인하게 위기를 넘길 것이다. 버드는 곧 그녀 자신이기에.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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