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리뷰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중증 알츠하이머인 어머니와 종종 간질 발작을 하는 아들 환. 베트남에서 궁핍하게 생활을 이어가는 이 모자母子는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두 사람 모두 비용 문제로 치료는 꿈도 못 꾸고 있는데, 증상만 점점 더 악화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때 환의 친구 중 하나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어머니가 한국 이중국적자이니 한국에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한국에서는 국적만 확인되면 요양 시설에 입소시켜 돌봄을 제공해줄 테니 잘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에 어머니를 버리라는 소리다.
환은 친구의 말을 곱씹는다. 어머니가 정말 한국의 시설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더 낳은 미래가 열릴지도 모른다. 여러 극적인 소동을 겪은 뒤, 고민 끝에 환은 결국 친구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환의 어머니가 이중국적자인 이유는 과거 그녀가 한국에서 일하며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로 남편이 죽고, 아들 지환을 남편의 큰형에게 입양 보낸 후 눈물을 머금고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환은 그녀가 베트남에 돌아온 뒤 태어났다. 어머니는 늘 한국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큰아들 지환을 그리워하는데, 환은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반복해서 찾곤 하는 얼굴도 모르는 형에게 괜한 반감을 느낀다. 어머니와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은 자신인데, 정작 어머니의 기억에는 형만 남아 있는 것 같아서다.
환은 여차하면 어머니를 형에게 떠넘기기로 마음먹고,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도착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찾은 형네 집 앞에서, 환은 어머니가 탄 휠체어의 방향을 돌린다. 환이 자기 눈앞에 펼쳐진 압도적인 풍경에 깊이 매료되어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만에 처음 본 형은 근사한 집에서 예쁜 아내, 아들딸 섞인 세 자녀와 여유롭고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중이다. 환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속에서나 누렸을 법한 환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환은 생각한다. ‘우리 가족 중에도 한 명쯤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환은 가족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어머니가 수십 년간 버텨온 불행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가족주의 유교 문화를 우리와 공유하는 베트남과 합작해 만든 적당한 상업용 가족 신파라 생각하며 영화를 보던 중, 결말에서 환의 결심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환이 형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해보자. 환은 인륜을 저버리고 어머니를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말하자면, 환은 매우 선량하고 밝은 청년이다. 단지 아픈 어머니가 귀찮아서 버리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란 소리다. 당연히 이 결심까지의 과정이 쉬웠을 리 없다. 환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어머니의 자살 시도를 비롯해, 긴박한 사건 사고가 무수히 많았다. 여기에 형에 대한 질투와 반감도 더해졌다. 이 모든 과정 끝에 환은 어머니를 버리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런데 환의 눈앞에 펼쳐진 단 하나의 강렬한 장면이 그의 발걸음을 돌린다.
환의 결심을 단번에 뒤집은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형 지환이 현재 만끽하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크고 소중해 보였기에, 환은 자신의 비참한 과거는 모두 잊은 듯 180도 생각을 바꾸고 다시 어머니와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일까.
영화는 내내 한국을 완벽한 가족의 이상적인 장소로 표상한다. 환의 어머니는 과거 일하던 한국 공장에서 한 남성에게 구애받아 가족을 꾸렸다. 30년 전, 그러니까 가부장적이고 인종주의적인 태도가 ‘상식’이던 시절이었는데도 남자는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하기만 하다. 두 사람이 꾸려나가는 가정생활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사고로 죽기 전까지, 환의 어머니는 환상적일 정도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마치 한국 사회가 다문화 가정에 아무런 편견도 없는, 이주민에게 이상적인 나라인 것만 같다. 어쩌면 환의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워한 것은 첫째 아들 지환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겨운 생활이 있는 베트남과 달리 아름답고 환상적인 가족의 온기와 안온한 생활만이 존재하는 한국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한국은 가족주의와 관련된 모든 판타지가 완벽하게 구현된 유토피아다. 심지어 버려진 타인종을 보호 시설에서 돌봐줄 것이라 상상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환이 발길을 돌리는 건, 이 유토피아를 훼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어서는 아니었을까. ‘천국’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면, 심지어 그곳에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있다면, 같은 현실도 이전과 달리 비루하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환에게 이는 그전까지는 ‘지옥 버전’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가족주의에 또 다른 면모가 있다는 걸 확인한 계기였을 것이다. 이것이 환이 감히 형의 행복에 ‘흠집’을 낼 수 없다는 마음에 발길을 돌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족주의 숭고함을 목격하고 일상을 ‘긍정’하기.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힘이다.
*물론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환이 ‘완벽한 가족주의’가 뿜어내는 압도적 아우라에 진정으로 감화되어 발길을 돌릴 만큼 끝내주는 곳이 아니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