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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서울동물영화제에서 만난 영화들

by re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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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The Birds Who Lived Home - Where Did You All Go?

김화용/한국/2025/65분/‘비전과 풍경’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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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닭에 관한 몇 가지 통찰


공장식 축산이 아닌,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간과 닭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탐색하는 이 영화에는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과 닮았다고 말하는 장애 여성의 인터뷰다. 두 번째는 귀농 후 반려 닭과 함께 일상을 보내는 청년의 인터뷰다. 그는 키우던 닭이 산을 돌아다니다 담비에게 잡아먹힌 경험으로 충격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도 닭을 가두지 않았다. 시골에 살며 생명이 죽고 사는 일에 관한 관점이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동물을 무조건적인 보호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마주한 작은 생명체들과 생태계의 순환 속에서 닭의 죽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영화가 여러 결의 이야기를 조금 산만하게 담아냈다는 느낌도 있지만, 몇몇 인상적인 통찰이 눈길을 붙잡는다.




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

로베르 브레송/프랑스, 스페인/1966/96분/‘애니멀 턴: 동물-영화사’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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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는 언제쯤 인간의 짊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영화는 당나귀 발타자르를 둘러싼 인간들의 이야기를 불친절하게 늘어놓는다. 당연한 일이다. 당나귀 발타자르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발타자르가 변화무쌍한 인간들의 면모를 하나하나 이해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럼에도 대략 개요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태어난 후 한 소녀에게 입양되어 귀여움을 받던 발타자르는 소녀 아버지가 소유권 문제의 휘말리게 되면서 다른 주인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발타자르의 고난이 시작된다. 시시때때로 발타자르를 괴롭히는 동네 패거리, 고된 노동을 강요하는 방앗간 주인, 서커스 곡예단, 구두쇠 노인 등등은 모두 발타자르를 자기가 필요한 대로만 대한다. 소녀는 어떻게든 발타자르에게 도움을 주려 하지만 불안정한 현실과 감정의 혼란으로 실패하고, 끝내 발타자르는 밀수업자에게 넘겨져 국경을 넘다가 총을 맞고 쓰러진다. 쓰러진 발타자르 주변에 들판에서 풀을 뜯던 양 떼가 모인다. 발타자르에게 종교적 구원을 선사하는 것이다. 발타자르는 총을 맞고 쓰러진 후에야 평안을 얻는다.


2023년에 개봉한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의 〈당나귀 EO〉가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두 영화 모두에서 당나귀를 둘러싼 인간의 행위는 불연속적이며, 대체로 폭력적이다. 늘 인간의 짐을 짊어지고 조용히 걷는 당나귀들. 두 영화의 시차 사이에서 당나귀를 둘러싼 구체적 폭력의 양태는 바뀌었지만, 그들의 폭력의 대상이라는 점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

Where We Stay for a While

왕민철/한국/2025/112분/‘비전과 풍경’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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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어지고 짙어지는 인간-동물 관계의 밀도와 농도


왕민철 감독의 동물 3부작 마지막 작품. 전작 〈동물, 원〉, 〈생츄어리〉가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윤리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면, 이번 영화는 그 연장에서 동물을 구조하고 돌보는 인간들의 내면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본다. 곰 농장에서 구조한 곰들을 돌보는 화천의 한 생추어리. 그곳을 주로 책임지는 건 네 명의 젊은 여성 활동가다. 이들은 강인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흔들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척박한 사회 환경 속에서, 이들이 동물을 돌보며 경력과 자격을 고민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이들의 고민은 ‘각자’의 고민이 아니다. 이들 고민은 같은 일을 하는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이 돌보는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무르익는다.


이들의 고민을 집약하는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이다. 지금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생추어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앞으로도 동물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일을 그만두면 지금 함께하는 동료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동물과 인간이 다르게 관계 맺으며 확장된 세계는 그 관계의 깊어짐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그 밀도와 농도를 더하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의 문제 중 뭐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 없는데도, 괜히 힘이 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작은 발자국: 카라 생추어리 다큐멘터리

Searching for a Home

김예지/한국/2025/40분/폐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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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도래할 그 시간을 향한 현실의 난제들


돼지, 염소, 닭 등의 동물이 머무르는 카라 팜 생추어리의 모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구조 전후 동물들의 ‘비포-애프터’ 사진은 인간이 동물에게서 무엇을 앗아갔는지에 대한 반성을 촉발한다. 영화는 활동가들의 소회와 그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의 수의사가 가축 산업 현장에 맞춰 훈련되었기에, 구조 후 나이 들고 병들어 죽어가는 동물을 돌볼 역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 가축 동물(염소)을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문제를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무엇 하나 명쾌한 답이 없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이 환한 표정으로 개별 동물들의 성격과 개성을 설명하는 장면이 보여주듯, 당장의 ‘답 없는’ 문제들도 구체적인 현실에 착근하여 버티다 보면 조금씩 ‘답’이 생기지 않을까. 언젠가 도래할 그 시간을 가만히 상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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