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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3학년 2학기〉에 〈파수꾼〉을 더하면

영화 〈우리의 이름〉 리뷰

by re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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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특성화고를 무대로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자연스레 〈다음 소희〉, 〈3학년 2학기〉의 연장에 놓인다. 배경만 같은 것은 아니다. 세 영화에는 모두 인문계 고등학교와 특성화 고등학교 사이에 놓인 사회적 위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실습을 나가 위험한 일 혹은 남들이 꺼리는 일에 투입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죽는다는 현실을 공통적으로 고발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우리의 이름〉에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영현의 친구가 말하듯 특성화고는 “뉴스에 죽는 것만 나오는” 곳이기에, 이 공통점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세 영화가 같은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 차이가 좋다. 〈다음 소희〉는 2017년 LG U+의 하청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을 하던 홍수연 학생의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에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지며 우리가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였다. 〈3학년 2학기〉는 위태롭게 성장하며 꿈을 향해 다가가는 청소년의 이야기다. 주인공 창우가 일하는 곳은 제대로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한 미숙련 노동자인 학생들이 일하기에는 위험이 일상적인 곳이고, 창우가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은 선배조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곳이다. 그런 위태로움 속에서, 창우는 조금씩 성장한다. 〈다음 소희〉가 왜 그저 어른이 되어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슬프고 화가 나야 하는지를 고발했다면, 〈3학년 2학기〉는 왜 우리가 이 ‘평범한’ 과정을 주인공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장 혹은 죽지 말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봐야만 하는지를 질문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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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름〉도 앞의 두 영화와 많은 것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영화의 특이점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두 영현이다. 영현a, 영현b.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전학 온 영현b는 같은 반 친구 영현a와 금세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이 각자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줄 수 있어서다. 영현b는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영현a에게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영현a는 영현b가 자격증을 따는 데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바로 두 영현과 그들의 친구 종수, 주왕이 빚어내는 관계성이다. 남성 청소년들의 관계를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영화에서 그들은 몰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얼핏 특성화고 학생들을 둘러싼 전형적인 편견을 강화할 수 있는 행동들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오가는 미래에 대한 설렘, 서로에 대한 애정 등 미묘하면서도 해맑은 감정들은 특성화고 학생들(혹은 남성 청소년들)을 특정 행위로 환원해 낙인찍는 편견을 너끈히 넘어선다. 네 친구 사이에 위기가 닥치기 전, 그러니까 공장에 뼈를 묻겠다고 결심한 주왕이 공장에서 사망하고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듯 보이던 두 영현이 같은 대기업 입사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되기 전까지 영화가 그려내는 남성 청소년들의 관계성은 이미 오래전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의 내면에 침잠한 기억과 감정을 순식간에 뽑아 올릴 정도로 인상적이다. 밝고 낭만적인 버전의 〈파수꾼〉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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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친구의 관계성은 두 영현이 대기업 입사를 두고 어쩔 수 없는 경쟁 관계로 뒤바뀐 후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영현a는 따돌림을 당해 전학 온 친구(영현b)를 도와줬다는 내용으로 자기소개서를 채우고, 친구가 지기 비밀을 활용했다는 데 배신감을 느낀 영현b는 영현a가 간절히 바라던 자리를 채가며 이 관계는 끝이 난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은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지나간 우정을, 함께한 시간을, 죽은 친구를, 서로를 향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아닐지라도, 이 마음은 내내 이들 마음속에 자리하며 종종 두 영현과 종수에게 아릿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안겨줄 것이다.


영화를 보며 이 정도의 완성도와 생기라면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일 거라는 짐작이 들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나는 자기 이야기에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해 판을 넓히는 이야기가 좋다. 〈우리의 이름〉은 〈다음 소희〉, 〈3학년 2학기〉의 연장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더해 이 일을 해낸다. 이제는 어른이 된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서 자기 마음속의 무언가를 끄집어내 다시금 마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으로 인해, 이 과정은 각자가 자리한 사회적 기울기의 아래편에서 힘겨움을 겪어본 적 있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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