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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정말로 비용을 낮춘다

by 맨오브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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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PC를 수리할 일이 있었다. 바보같이 본체 위에 물을 쏟아 전원이 나가버렸다. 말린 뒤 켜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결국 컴퓨터 수리점으로 본체를 들고 가 수리를 맡겼다.


내가 우리나라 가게를 방문할 때 자주 받는 느낌이 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좀 대충이네~" 느낌? 일처리가 시스템보다는 말과 이해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다. 수리점에서는 나의 이름과 연락처를 (다른 정보가 빼곡히 적혀있는) 화이트보드에 대충 휘갈겨 적었고, 나에게 접수증과 같은 확인 문서 하나 주지 않았다. "점검하고 문자 드릴게요~"라는 멘트가 전부였다.


불친절했다는 뜻이 아니다. 수리점 사장님은 매우 친절했다. 전화 응대도 능숙히 해주셨고, 수리를 맡겨달라는 자신감도 충분했다. 나는 이 수리점이 마음에 들었다(수리 퀄리티도 훌륭했다). 나는 대부분의 확인과 처리 과정이 기록되지 않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접수 확인서나 수리내역서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나는 수리비를 계좌이체로 전달했고 돈이 잘 갔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계좌가 다른 사람 것이라 그 자리에서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잘 들어왔겠죠~"라며 나에게 안녕히 가시라 말했다.


그야말로 암묵적 신뢰로 가득 찬 프로세스였다. 사실 믿는 사람끼리야 문서 프로세스를 건너뛰어도 괜찮다. 물론 모든 거래 내용을 문서로 남기는 게 좋지만 그게 번거롭다는 사실도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가게들이(심지어 기업 간 비즈니스에서도) 프로세스를 건너뛴다. 그게 편하고 빠르니까.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으니까. 도쿄 여행 중 문서를 프린트하러 인쇄샵을 갔는데 일단 회원가입부터 해야 했던 것, 그리고 몇 장을 프린트할 것인지 요청서를 작성해야 했던 것과는 무척 다르다.


신뢰는 편리하지만 깨지기도 쉽다. 그렇다고 모든 프로세스를 빡빡하게 지키면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다. 균형 잡기가 참 어렵지만 그게 묘미인 것 같다. 편안함과 확실함의 균형을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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