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년마다 찾아오는 친구
'여름' 휴가가 아니라 방학이 먼저 떠올랐던 초등학생 시절, 나에게 여름방학은 ‘혼자가 되는 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함께 방학을 맞이한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보낸 시간이 많을 텐데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면 혼자 있던 순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시절의 여름방학은 90년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이 출근하고 나면 곧장 텔레비전을 틀었다. <아침마당>, <좋은 아침> 같은 주부 정보 프로그램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정규방송이 끝나고 화면 조정이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전원을 껐다. 계속 방송을 보고 싶었지만 케이블 방송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이라 텔레비전을 틀어도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클 때면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어린이 만화나 영화를 보곤 했다. 하지만 가끔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놔도 볼 게 넘치는 때가 있었다. 바로 ‘올림픽’이었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이 있는 여름은 소위 복 받은 방학이었다. 원래라면 방송이 없는 낮에도 경기 장면이 송출됐다. 각 경기가 어떤 규칙을 따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고팠던 초등학생은 조정 화면이 아닌 움직이는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육상이 나오면 더욱 신이 났다. 외국 선수들이 가득한 육상 경기장을 바라보며 방송을 중계하는 해설가의 말을 유심히 들었다. '해설가의 긴 설명이 덧붙는 저 사람이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트랙의 번호를 확인하고 선수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넓은 경기장에서는 다양한 경기가 펼쳐졌다. 빠르게 허들을 뛰어넘는 모습이 멋졌고 날아가듯 멀리 뛰는 선수들의 움직임은 신기했다. 메달을 따고 기쁨에 포효하는 선수들을 보면 손뼉을 쳤고, 메달을 따지 못해 좌절하는 선수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아팠다. 당시 육상 경기에는 한국 선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의 편이 되지 않은 채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낮에도 볼 수 있는 방송이 있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고 오히려 텔레비전을 독차지하고 아무 생각 없이 선수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매년 올림픽이 시작될 때면 달달 돌아가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아빠처럼 모로 누워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텔레비전을 보던 어린 내가 생각난다. 그때의 나라면 누군가 ‘혼자 있어 외로웠지?’라는 질문에 진심을 담아 ‘아니요. 올림픽 경기가 있어 좋았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오래된 친구는 4 년에 한 번 잊지 않고 나를 계속 찾아오고 있다. 볼 게 넘치고 더불어 할 일도 많은 요즘은 예전처럼 하루 종일 경기 방송을 틀어놓지 않는다.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한 경기만 골라 보거나 하이라이트 편집본만 확인한다. 이렇게 변한 나지만 그 옛날 나의 친구였던 올림픽은 묵묵히 나에게 돌아와 내 곁에 있어 준다. 그래서일까 챙겨 보지 않더라도 올림픽이 열리는 자체만으로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느낌이 든다. 올해도 그 친구가 찾아와 마음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