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이 만기 됐다. 아이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을 목표로 가입한 적금이었다. 이 년간 매달 이십만 원씩 모았더니 쏠쏠한 이자까지 더해져 오백만 원이 손에 쥐어졌다. 여행지에 따라 충분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는 돈이다. 작년 갑작스러운 이사로 갖고 있던 몇 개의 예·적금을 깨는 와중에도 여행 적금이라 별명을 붙인 이 적금만큼은 깰 수 없었다. 계좌 속 늘어나는 숫자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단서였기 때문이다.
적금을 넣는 이 년 동안 일상 속 여유가 생길 때면 우리 가족의 첫 여행지를 상상했다. 어느 날은 예산안에서 무리 없이 갈 수 있는 일본이나 동남아를 도착지로 삼았다가, 또 어떤 날은 돈을 더 모아 호주나 미국 서부 정도는 가볼까 싶기도 했다. 그 많은 상상의 결과는 후보지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필리핀 ‘보홀’이 됐다. 저가 항공 직항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곳 중 공항과 시내의 거리가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보홀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나는 도시 여행을 선호하지만, 지금까지의 해외여행 중 보라카이를 최고로 뽑으며 느긋하게 휴양하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목적지가 정해진 후 가장 먼저 항공권을 결제했다. 항공권만 결제하면 여행의 절반은 해낸 셈이다. 이제 정말 낙장불입, 떠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족이 함께 묵을 리조트와 아이랑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투어를 검색했다. 그런데 여행을 앞두고 준비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해외여행이라면 없던 힘도 생기던 나였는데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크게 설레지 않았다. 변한 내 마음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지난날의 여행을 떠올렸다.
대학 졸업 후 사회로 나와 마주한 현실은 초라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반짝이는 타이틀이었단 걸 졸업 후에야 알게 됐다. 이름만 들으면 설명이 필요 없는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며, 자아실현에 다가간 것도 아닌 평범한 중소기업의 사무직 사원이 캠퍼스를 벗어나 내가 선 자리였다.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모든 허울이 사라진 후 현실과 타협하여 얻은 것은 작지만 소중한 월급이었다. 적긴 해도 대학 때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손에 쥐어졌던 돈보다 풍족한 돈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는 기쁨은 달콤했다. 오천 원에도 지갑이 열렸다 닫히길 반복했던 학생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만 원 아래 식사는 고민의 대상도 되지 않는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마음만 먹으면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예전보다 쉽게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름휴가 시즌이 다가오면 달력을 보며 머리를 굴렸다. 당시엔 요즘보다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직장 상사에게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여름휴가를 비롯해 달력에 연달아 이어진 빨간날을 보면 비행기 표부터 검색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매 여행의 가장 큰 미션은 여행의 시작인 항공권을 싸게 사는 것이었다. 항공권만 싸게 사면 여행의 반은 성공한 기분이었다. 예외도 있었다. 항공권이 비싸더라도 추석, 설날 같은 긴 명절 또한 연차를 쓰지 않고 길게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여름엔 성수기를 피해, 명절엔 직장 상사의 눈치를 피한 나라 밖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챙겨야 할 가족도 일정을 맞춰야 할 특정 인물도 없었기에 때마다 상황이 맞는 친구들과 휴가를 맞춰 해외여행 계획을 짰다. 주 공략지는 비행시간이 길지 않은 일본과 동남아시아였다. 짧으면 2박 3일, 길면 4박 5일의 여행을 위해 일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시기에 여행은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갑갑한 현실과 결국 이뤄지지 않은 크고 작은 도전 속, 누군가의 도움 없이 바꿀 수 없는 가장 쉬운 환경의 변화가 여행이었다. 여행을 간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고 엄청난 경험을 하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며 느끼는 일탈과 여행 후 SNS를 통해 자랑하는 기쁨은 나를 좀 더 멋진 사회인으로 만들어주는 기쁨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떠날 수 있었던 미혼 직장인 시절과 달리, 결혼 후 여행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신혼 초 남편과 나는 수입을 서로 공개하고 통장을 합쳐 관리했는데, 전세살이를 하며 몇 년 안에 집을 사야 한다는 목표가 있어 한 번의 해외여행에 드는 비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더불어 결과적으로 여행에 드는 비용은 연애 시절 각자가 부담하던 금액과 같지만, 결혼 후 한 통장에서 비용이 지출되다 보니 여행비가 두 배로 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없는 신혼 때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 때문에 목돈이 드는 여가생활은 쉽게 즐기기 어려웠다.
아이가 태어난 후론 여행에 앞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비용에 대한 부담은 물론 만약 부부가 여행을 간다면 아이는 누가 봐줄 수 있을지, 아이와 함께 간다면 떠나기 전 미리 챙겨야 할 많은 육아용품과 우리의 취향이 아닌 아이에게 맞는 장소를 다녀야 할 각오를 해야 했다. 아이의 돌이 지난 후 남편과 아이를 한국에 남겨두고 두 번의 해외여행을 갔다. 친구들과 몇 년간 모은 곗돈으로 일본을 다녀왔고. 엄마 환갑을 기념하여 방콕으로 모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여행을 앞둔 준비는 예전과 달랐다. 우선 남편이 연차를 쓸 수 있는 날짜에 일정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했다. 여행지도 내가 원하는 곳보다는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 곳이 우선시됐다. 아이가 생기기 전 여행을 앞둔 가장 큰 고민거리는 사진에 남을 예쁜 옷을 고르는 거였다면, 이제는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준비해 둘 아이 반찬이 더 걱정이었다. 회사 동료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떠나는 것보다 남아있는 남편에게 육아 인수인계를 하는 게 더 어려웠다. 여행이 주는 일탈은 여전히 달콤했지만 떠나는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코로나로 여행은커녕 외출도 어려웠던 시기가 지나 가족이 함께 떠나는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지금, 사실 기대감보다 피로감이 앞선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행을 위해 챙겨야 할 가족의 짐, 여행 동안 아이를 챙기기 위해 곤두서야 할 신경을 떠올리니 이미 여행을 마친 후의 안도감이 기다려질 정도다.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여행이 맞나 싶다. 알아서 자기 물건 잘 챙기는 남편이 있어도 걱정은 마모되지 않는다.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집보다 쾌적한 숙소에 대한 기대감이다. 하지만 작년 이사 후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가꿔가는 집을 떠날 생각을 하니 스위트룸이 아니고서야 타국의 리조트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 새 건물이 아닌 이상 화장실 어딘가에 물때가 남아 있을 것이고, 침실 구석구석 미쳐 치우지 못한 타인의 흔적이 남아있을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내 살림을 한 후 떠난 어느 숙소도 내 기준에 부합하는 청소 컨디션을 가진 곳은 없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주부로서의 내 역할이 떠올라서일까,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 이상하게도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는 잘 보인다.
더불어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까지 여행 내내 한 공간에 계속 지내야 한다는 갑갑함도 있다. 가족과 함께 하루 종일 붙어있는 건 행복하지만 피로감이 크다. 여행 기간 동안 방이라도 분리되어 있으면 한숨을 돌릴 틈이 생길 것 같건만 한달치 대출 이자만큼의 비싼 숙소를 예약할 만큼의 담대함과 여유가 없어 여전히 가성비가 우선인 숙소에 손이 간다. 한시도 떨어질 틈 없이 한 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지낼 생각을 하니 장소가 바껴도 분주할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아이가 좋아할 만한 수영장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캐리어 하나에 내 짐만 담고 오로지 나만 생각하며 떠났던 여행은 한동안 어렵다는 현실을 알고 있다. 결혼 전 혼자 떠난 여행이 현실을 벗어난 달콤한 휴가였다면, 결혼 후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함께 풀어나가는 숙제와도 같다. 이 모든 걱정에도 불구하고 눈을 반짝거리며 새로운 환경을 담고 여행 후 남은 추억을 재잘거릴 아이를 생각하면 불만은 가라 앉는다. 엄마가 된 나에게 이제 여행은 출발 전의 설렘보다 여행 후 함께 남을 추억에 무게가 쏠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