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은 후에야
한 달 가까이 방바닥을 굴러다니던 풍선을 집어 들었다. 아이의 생일 파티 장식을 위해 열심히 쿠팡을 뒤져 고른 분홍색 하트 모양 호일 풍선이었다. 호일 풍선은 일반 고무풍선 달리 부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고 형태가 꽤 오래 유지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하원하기 전 급한 마음으로 빵빵하게 분 풍선은 벽에 잘 붙지 않았다. 여러 개의 테이프를 붙여 겨우 벽에 고정하고, 아이를 앞세워 SNS에 자랑할 만한 사진을 몇 장 찍고 나니 그새 풍선의 인내심이 다했는지 힘없이 벽에서 ‘툭’ 떨어져 버렸다. 그럴싸한 사진을 남겼으니 이제 풍선은 벽에 꼭 붙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풍선을 구석으로 치워놓고 가족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파티를 이어갔다. 풍선을 바로 치워도 되건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정리하지 못했다.
- 호일 풍선은 꽤 오래 모양이 유지되는데, 이대로 뒀다가 이주 뒤 있을 결혼기념일에 사용할까?
- 바람을 살살 빼면 보관이 가능하다는데, 한 달 뒤 있을 내 생일과 남편 생일에 재활용할까?
- 아파트 단톡방에 글을 올려 필요한 사람에게 나눔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았고, 풍선은 식탁 밑에서 거실 구석으로, 거실 구석에서 아이 방으로 계속 장소를 옮겨 다녔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온 집을 굴러다니던 풍선이 갑자기 눈에 거슬렸다. 아직 쓸만해 보여 잠시 망설이다 이만큼 굴러만 다녔으면 더 이상 필요 없는 게 맞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가위를 가져와 풍선을 자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생일 이주 뒤에 있었던 결혼기념일에는 내가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바람에 풍선을 다시 사용할 기회를 놓쳤고, 그 뒤로 바람을 빼서 보관할 만큼 풍선에 정성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무료 나눔도 귀찮아서 미루다 보니 단톡방에 올릴 타이밍을 놓쳤다. 사실 이런 패턴은 호일 풍선을 살 때마다 반복된다. 아쉬운 마음에 버리지 못하고 몇 주간 집안을 굴러다니다 결국 쓰레기통으로 가는 풍선의 엔딩. 아까운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작아지고, 마음이 떠나고 나면 버리는 게 쉬워진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십 년간 입지 않은 스키복, 출산 후 체형이 바뀌어 더 이상 맞지 않는 코트 몇 벌이 육 년 전 이사와 정리한 그대로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사서 딱 세 번만 입어 아직 본전을 뽑지 못한 스키복은 언젠가 다시 입을 일이 생길 것 같았고, 작아서 맞지 않는 옷들을 볼 때면 기필코 살을 빼서 다시 입으리라 다짐했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옷들은 각오와 다른 결론을 맞이했다.
비좁아진 드레스룸이 갑갑해 대대적인 옷 정리를 하다 입지 않고 보관만 해두던 옷들의 색이 바래진 걸 발견했다. 드레스룸 창가 근처에 옷을 몇 년간 방치했더니, 지속적으로 햇빛을 받은 부분의 천만 연해졌다. 색이 변해버린 옷은 더 이상 보관할 가치가 없었다. 이제껏 입지 않았으면 버릴 때가 됐다는 마음과 더 이상 이 옷들을 입은 나의 모습이 기대되지 않음을 받아들이며 옷을 모두 끄집어내며 헌옷수거함에 넣기로 결심했다. 재활용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옷을 빨리 정리했으면 중고 거래로 약간의 금전적 이득을 봤을지도 모르고,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다른 형태의 아쉬움이 몰려왔다. 버리러 가는 동안에도 나에겐 미련 한 조각이 남아있었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건 물건뿐만이 아니다. 마음도 잘 버리지 못하고, 사람도 잘 버리지 못하고 나아가 일의 결론을 맺고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것도 어렵다. ‘치고 빠지는걸’ 못한 채로 내가 가진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는 일이 잦다. 몇 년 전 새로 시작한 일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 만큼 수익이 나지 않지만 어영부영 진행하고 있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지인에게 인연을 이어간다는 마음속 핑계를 대며 어느 날 문득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아 만나는 일도 종종 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여기저기 살펴보며 고민한 채로 방치하다 결국 제시간 안에 사지 못해 쿠팡 로켓배송으로 사는 경우도 많다.
내 영역에 들어온 많은 것들을 잘 떠나보내지 못한다. 그 기저에는 ‘혹시나’라는 기대와 ‘그래도’라는 불안함이 깔려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마지막 끈을 계속 잡고 있거나,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며 불안에 보험들 듯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매달린다. 그런데 요즘 그 마음들이 임계점을 맞이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계속 마음에 담아 놓다 보니 시기를 지나치거나 원래의 색을 잃어 떠나보내는 마음들이 생긴다. 20대가 아니면 이루기 힘든 꿈들은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조건이 안 맞아 놓게 되고, 결국 활용하지 못하고 돈만 들인 자격증을 떠올리며 불안함 때문에 애쓰며 살 필요 없다 결론짓기도 한다. 긴 시간 아쉬운 마음을 속에 꾹꾹 담고 있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결정이 빠른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일 하나를 시작하려면 A에서 Z까지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받을 스트레스까지 예상하며 손을 젓고 마는 나와 달리, C까지만 알아도 시작해 버리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 시작도 빠르고 포기도 빠르다. 한때는 지인의 행동이 철없고 조급하다 생각했지만, 빠른 결정 덕에 좋은 성과를 내는 걸 지켜보다 보니 이제 내가 아둔한 것처럼 느껴진다.
내게 버리는 마음, 결론짓는 마음은 항상 힘들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것을 손에 쥐고 놓지 못한다. 한 달간 집안을 굴러다니다 더 이상 필요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후회 없이 버릴 수 있는 풍선처럼, 나에겐 어떤 일이든 최후를 받아들이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쉽게 버릴 수 있는 마음도 있지만 어떤 일들은 닳고 닳아야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그 과정을 통해 천천히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닳고 닳은 마음을 놓기 시작하니 놓지 못한 것들 아래에 숨어있던 내가 참기 힘든 것, 참을 수 있는 것, 진짜 원하는 것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야 버릴 수 있는 마음이 있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드러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또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