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올해 여름은 유독 더운 날이 이어졌다. 뜨거워진 여름 공기에 휴대용 선풍기도 더 이상 외출의 열기를 식혀주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여름 햇빛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양산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삼십 대 끝자락의 여름이었다.
어린 시절, 양산은 엄마의 여름 외출 필수품이었다. 마치 요즘의 휴대용 선풍기처럼 말이다. 햇살이 쨍쨍한 날 엄마와 함께 외출할 때면 양산을 든 엄마 옆에 가까이 서서 걸어갔다. 레이스 무늬로 꾸며진 분홍색 양산을 든 엄마 옆에 딱 붙어 조잘거리며 성당을 갔고, 병원을 갔고, 장을 보러 갔다. 대화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양산 덕분에 엄마와 나의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의 양산 그늘에 몸을 숨기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올 여름, 유치원생이 된 아이의 예방 접종을 위해 집 뒤편에 있는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 연일 폭염을 기록하는 날씨였지만 차로 움직일 거리는 아니었다. 미루던 숙제를 해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외출 준비를 하다 몇 해 전 일본 여행을 하다 갑작스레 내린 비를 피하고자 샀던 양우산이 생각났다. 여름에 양산을 쓰고 다니는 건 나이 든 증거 같아 피해 왔는데 아이가 함께 쓴다면 부끄러움이 덜할 것 같았다. 얇은 재질이라 기대보다 햇빛을 잘 막지는 못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이는 내 손을 꼭 잡고 햇빛을 피하기 위해 내 몸 가까이에 있는 양우산의 그늘 속으로 들어왔다. 한 손엔 양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새삼스레 내가 엄마가 됐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양산은 나이 든 여성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 소유의 양산을 쓰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 방문 이후 나를 위해서도, 아이와 함께할 외출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양산을 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구매를 미루다 어느 날 저녁 샤워 후 생각보다 더 많이 타버린 팔을 발견하고 적당한 양산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양산과 우산 기능이 합쳐진 제품이었지만 우산보다는 양산의 기능에 좀 더 집중된 제품이었다. 안쪽에 암막 처리가 되어 기존에 갖고 있던 양우산보다 훨씬 더 햇빛을 잘 막아줬다. 이후에 혼자 나가는 외출에도 양산을 손에 쥐고 나간다. 양산 없이 다니는 나보다 어린 여자들을 보면 내 손에 든 양산이 나이 듦의 증거 같아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어느 날 근육질의 남자가 검은색 양산을 쓰고 가는 걸 보고 이제 양산은 트렌드라 생각하며 당당해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여전히 버스에서 내리며 양산을 펼칠 때면 살짝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
아마 올해를 기점으로 나는 매해 여름 양산을 챙겨 다닐 것 같다. 들고 다니기 번거롭긴 해도 햇빛을 가리기에 이만한 게 없다. 양산은 뜨거운 햇살 속 나를 위한 그늘을 만들고 나와 함께 다닐 아이의 그늘까지도 만들어준다. 그렇게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되어감을 양산을 통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