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정원을 가꾸는 건 이파리들 사이로수줍게 얼굴을 내민 꽃송이를 발견하는 기쁨을 얻기 위함도 있으리라. 그 정도는 아니어도 무심히 방치하던 동양란에 꽃대와 함께 은은한 향이 올라와 감동한 적이 있다.
우리 집도 정원이 있었다. 늦여름 맨드라미가 고개를 치켜들었고, 담장 밑에서는 연두색 오이가 수줍게 익어갔다. 꿀벌들이 한창 바빠질 무렵에는 온갖 꽃이 뿜어내는 향기에 아찔할 정도였다.
살아가며 맺은 관계들이 자라는 정원,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사랑이리라. 붉은 장미처럼 정열적인 사랑일 수도, 목이 긴 칼라꽃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일 수도 있다. 우정이 싹트기도 하고 숭고한 사랑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런 사랑의 위대함을 찬미한 노래가 있다. <위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칸초네다. 여러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지만 1970년대 마리오 델 모나코가 부른 버전을 좋아한다.
그가 그 노래를 부르는 뮤직 비디오를 넋을 잃은 채 본 적도 있다. 홀린 듯 이태리어 가사를 노트에 적었고 뜻도 찾아 적었다.
시간이 켜켜이 내려앉은 이태리 어느 대저택이 배경이다. 햇살이 정원 위로 쏟아지고 분수대의 시원한 물줄기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느끼고 있어 내 얼굴 위로 스치는 너의 한숨을‘로 노래는 시작된다'. sento sul viso il tuo respiro
점잖게 나이 든 한 노인 하나가 과거를 회상한다. 지그시 감은 눈앞에는 지나버린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택의 주인이었을 그는 밝고 열정적이며 분명한 성취 덕에 영향력 있는 남자였음이 분명하다. 델 모나코니까.
황금 트럼펫으로 불리기도 했던 테너 델 모나코의 드라마틱한 음색은 지중해 위로 솟는 태양처럼 맑고 청량하다. 코발트 계열 세피아풍 영상과 잔잔한 피아노 연주는 추억을 더욱 아련하게 해 준다.
그의 음성 위로 사랑의 시가 실린다. ‘몸의 안과 밖 그리고 주변이 불타오른 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입술이 다시 불타오르네.
un silenzio breve e poi la bocca tua si accerde un altra volta
이 노랫말은 어쩌면 한 겨울을 보낸 뒤 다시 봄이 찾아온 관계 정원 풍경일 수도 있겠다.
관계의 정원이라고 겨울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계절에만 머물러선 안된다. 좋았던 관계가 멀어지고 오해와 갈등이라는 칼바람이 꽃대를 꺾어 화초는 영면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바닥에 떨어진 관계의 질에 겨우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그보다 불행한 일이 있을까.
노래는 뱃사공의 노질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곤돌라처럼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간다.
이어서 감정에 솔직하고 삶에 충실했던 자 특유의 당당함이 묻어나는 남자가 오페라 복장을 하고 거리로 나선다. 내딛는 그의 한발 한 발에 선망의 눈빛이 떨어지고 셔터 세례가 쏟아진다. 시원하에 담배연기를 내뿜던 그가 갑자기 돌아서 사람들을 노려본다.
대저택 포치에 선 델 모나코가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그의 싸인과 함께 영상은 끝난다.
‘그렇게 위대한 사랑, 사랑은 그렇게 위대해’ Un amore cosi grande Un amore cosi
느끼고 있어 내 얼굴을 스치는 당신의 숨결을
당신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오늘도 어찌 그리 부드럽고 달콤할까
나에게 당신이 준 그것 때문에 나는 감사하오
그렇지만 당신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소
당신의 숨결이 느껴지고
당신의 향기가 더 가까워지고 있소
나를 세게 끌어안고 있는 당신
왜 그런지는 묻지 않겠소
저녁이 내려오고 밤은 미쳐가고 있소
당신의 깊은 눈동자는 나를 불타오르게 하오
그렇게 위대한 사랑은
사랑은 그렇게 위대하오
내 안과 밖 그리고 우리 주변이 불타오르고 있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당신의 입술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고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