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정치 관련 글을 자주 올리는 선배가 있다. 60을 넘기고도 열혈민주청년이다. 그날도 민감한 이슈 하나를 올렸다. 모 프로야구팀이 광복절에 일본인 투수를 선발로 출전시킨다는 거다. 그도 문제지만 일장기까지 게양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자 그 선배 동기 하나가 댓글을 달았다. 관례인 걸 어떡하냐는 거다. 원래 출전선수 국기를 태극기와 함께 게양하는 게 관례인데 그 선수 국기만 내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글을 올린 선배가 발끈했고 그 선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어 몇몇 선배들의 집중포화가 시작됐고 선배는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다수는 침묵 모드였지만.
댓글을 단 선배 주장은 이런 시각도 있지 않나 정도였다. 그럼에도 순식간에 민족을 팔아넘긴 매국노가 돼버렸고 일부는 저 놈 사람새*도 아니라며 인신공격을 했다.
살다 보면 이럴 때가 있다. 다수 생각과 내 의견이 다를 때 말이다. 주류 의견이 주야장천 반복되다 보면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나서자니 후한이 두렵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침묵은 금’이란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다수의 '결'을 거슬렀다간 생존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담겨 있다. 같은 지역이나 종교, 정치를 기반으로 한 모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경우 구성원은 같은 소리를 듣고 말하고 인정을 주고받는다. 그에 반하는 생각은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발도 들여놓지 못한다. 이는 마치 한 목소리가 방에서 메아리치며 울려 퍼지는 것과 같아 '에코챔버' 효과라 한다.
그 경우 발언은 개인 의견이라기보다는 집단 소속감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기후 위기 문제가 그렇다. 누구도 그 이슈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조사를 하지는 않을 거다. 그저 내가 서 있는 지형에 따라 움직일 뿐. 예외도 있겠지만 극소수일 거다.
이처럼 같은 맥락지도를 가진 공동체에서 주류 의견에 반하는 소리를 내는 건 기름 들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다. 사람들은 그를 그저 다른 사람이 아닌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고 낯선 세계에서는 사람, 공공에 위험을 끼치는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이때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객관성과 합리성을 주장해 봐야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나와 반하는 생각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는다. 승패의 환상에 빠지기 때문이고 쉽고 실용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모든 걸 단순하게 분류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곳이 에코챔버라면 침묵을 선택하는게 생존에 유리하다. 그렇지 않다간 밖으로 내쳐질 것이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가 분리의 공포 아니던가.
* 결국 그 구단은 그날 선발을 다른 선수로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