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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장동혁
Sep 02. 2024
터널이 다가올수록 뉴스는 중요해진다
누구에게나
사람을 품어내는 그릇이 있다. 웬만한 건 받아주는 안락한 소파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에 담아두고 진액을 우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잘 품으려면 무엇보다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내 기준이라는 송곳이 군데군데 튀어나와 있는데 편해할 사람은 없다. 언제 평가 결과가 나를 찌를지 늘 불안하다.
소개를 받아 다섯 번 만난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으로 강남에 있는 같은 교회를 다녔다. 첫 만남부터 대화가 잘 통했다. 두 번째 만나던 날 인파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표정 없는 얼굴에 미소가 번질 때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상처가 많았다. 교육열이 유독 높았던 어머니는 군인인 남편을 두고 자식들만 데리고 상경했다. 그런 데다가 장녀에 대한 기대까지 높아 지나치게 공부로 밀어붙였다. 그 덕에 안정된 직장을 갖게 돼지만 마음은 만신창이였다.
그녀 말에 의하면 시골 촌년이 공부 좀 한다고 친구들까지도 왕따 취급을 했다고 한다. 그 모든 게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마음에 박혔다.
그래서인지 무표정한데다가 혼술이 잦았다. 생마늘에 고추장 안주로 깡소주를 마신다고 했다. 노르웨이 협곡에 가서는 궤짝으로 소주를 마셨다고도 한다. 그런 자신을 참을 수가 없어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애초에 나는 그 사람을 품을 그릇이 아니었다. 그녀 바람과 달리 나는 늘 점잖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만 찾았다.
그날도 과천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차로 이동하던 중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그냥 저기서 먹으면 안 될까요“ 비닐하우스들 사이에 식당 하나가 박혀있었다. 간판에는 삼겹살, 돼지껍데기, 머리 고기, 소주가 적혀 있었다.
“그래? 그럼 차라리 저기로 가자” 평소 잘 가는 바비큐 전문점이었다. 바비큐 모둠 세트가 나오자 소주 한 병 시켜도 되냐고 물었다.
초록색 병을 돌려 뚜껑을 따더니 자기 잔을 조용히 채웠다. "운전 때문에..." 나는 사이다로 대신했다. 그녀 혼자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날 밤늦은 시각 문자가 울렸다. 반가운 마음에 폰을 들자 '오빠 나를 좋게 봐줘서 고마워'가 떠 있다. 버튼을 누르니 이제 더 이상 상처를 주기도 싫고 받기도 싫으니 좋은 여자 만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떴다.
뜻밖의 문자를 받고 방으로 걸어가는데 공중에서 문워크를 하는 느낌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지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차가웠다.
네 번의 만남은 둘 모두에게 기회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 기회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 가능성을 살필 기회. 그런데 나는 그그 기회가 영원할 줄 알고 혼자 신나 있었고, 그녀는 내가 아마도 영원히 맘을 열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터널 입구가 다가올수록 듣고 있는 뉴스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전파가 끊겨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면 마음이 급해진다. 어리석게도 누군가 떠나고 난 뒤에야 애가 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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