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동혁 Sep 03. 2024

내가 남아 있는 나날

<남아 있는 나날>의 주인공 스티븐 집사의  뒷 이야기

  남자들은 사랑을 놓치고 많이 후회한다. 여자도 그렇겠지만 남자만 못할 거다. 그 원인도 가지가지다. 그 원인을 대라면 나는 마흔여섯 가지는 댈 수 있다. 유사 문제임에도 틀리기를 반복한다. 풀기 시작할 땐 문제 유형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스티븐스의 꿈은 모두가 인정하는 집사가 되는 거다. 그리하여 누가 봐도 존경할만한 명사의 저택에 들어가는 거다. 당대 최고 집사들 모임의 회원이었던 아버지 덕에 생긴 꿈이다.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을 모시게 된 그는 전심으로 그를 보필한다. 물품을 구입하고 일할 사람도 채용했다. 요즘 말로 관리이사다. 최고 집사가 꿈인 그는 많은 것들을 주변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그를 마음에 두고 있던 여인도 있었다. 안살림을 맡아보는 켄턴 양이다.


  대소사를 운영하며 그는 그녀와 부딪치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여인의 마음에 사랑이 싹튼다. 감정에 솔직한 켄턴은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최고 집사 되기라는 일념에 빠져 있던 그는 그 관심을 외면했다. 결국 그녀는 그를 떠나 저택을 나오게 된다.




  빈자리 생기자 그녀가 먼저 떠올랐고 휴가를 내 인터뷰를 하러 간다. 그녀에게 가는 길, 그녀가 여전히 싱글일지 아니면 가정을 이루고 아이까지 두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결국 그는 홀로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그는 뜻밖의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켄턴 양을 인터뷰하고 돌아오며 나는 규명하기 어려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감정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처음엔 그저 여행의 목적인 켄턴 양을 설득하는 일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려니 했다. 그 사실을 페러데이 나리에게 보고하는 일은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자리를 메꿀 사람으로 켄턴 양이 유일한 건 아닐뿐더러 그 자리에 누가 온들 페러데이 나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묘한 감정은 차선 변경을 위해 우측 사이드미러를 보는 순간 드러났다. 평소와 달리 사이드미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게 부자연스러워 눈으로만 사이드미러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와 헤어져 차로 돌아온 이후 조수석 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건 얼마 전 주인님 서재에서 보았던 <꿈의 해석>에 나온 무의식이란 것이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생각됐다. 그래도 힘겹게 고개를 돌려 비어 있는 조수석을 보자마자 감정의 실체가 드러났다.


  허전함이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마음 한편에는 돌아오는 길은 반드시 켄턴 양과 함께일 거라는 기대감이 자리했던 것 같다. 


  마침내 눈이 마주친 감정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물 샐 틈 없이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이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 감정이 홍수처럼 밀고 들어왔다.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운전 중 사고를 당해 주인님 차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낭패다. 휴가를 내주시고 차까지 이용하도록 배려해 주신 주인님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그날 들른 휴게소는 여느 휴게소와 달리 도로 위 육교 형식으로 지어진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었다. 최신식 시설과 외관은 세상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만 그걸 모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자 달링턴 경 저택에서 보낸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주문한 뒤 마음을 진정시키려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하나 한 번 무너진 마음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받아 자리로 돌아올 때는 허공을 걷는 것처럼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돌아오는 길 어느 휴게소에서 켄턴 양과 식사를 하며 앞으로의 일들을 나눌 거란 기대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피시 앤 칩스가 볼품없다. 기름 온도를 너무 낮게 잡은 게 분명하다. 


   식사도중 나는 창문 바라보는 걸 애써 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리창 안에는 집사로서 한평생을 보내고 은퇴한 아버지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톨게이트를 지났다. 12마일만 더 가면 또다시 나는 사라지고 주인님 관심사에 모든 걸 맞추고 있는 집사 스티븐슨이 남을 것이다. 그때까지 20여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왠지 이대로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올라왔다.


  그냥 돌아갔다가는 남아 있는 나날이 회한의 나날이 될지도 모른다. Full을 가리키는 오일 게이지도 나를 부추겼다. 


  얼마 후 눈앞에는 켄턴 양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곳으로 진입하는 톨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의 빛깔은 투명이다. 그땐 배경인 고통스러운 사건과 상대만 보이는 이유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그 색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때 그 말이 그 뜻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제야 그리워해 보지만 소용없다. 고통에선 벗어났지만 그 주인공 역시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 시대가 변해가는 줄 모르고, 아버지 삶을 따라 영국 최고 집사 자리에 오르는 데 청춘을 바친 스티븐슨. 이제 남아 있는 나날만큼이라도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터널이 다가올수록  뉴스는 중요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