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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Sep 08. 2024

누군가에겐 예감은 들리지 않는다

한 때 토니였던 사람과 에이드리언이 되살려낸 토니 인생의 단편


    누구나 사실이라 믿고 있는 인생이 실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인공 토니가 보여주듯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맹목적 확신 가운데 굳어져 자기 신화가 되어버린 이야기, 그게 인생이다. 나라는 동굴을 나와 인생의 실체를 보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게 내 인생이라고 의심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낯설고 섬뜩한 삶의 실체와 마주칠 때 우리는 토니가 그랬듯 펍에 앉아 감자칩을 무심히 씹으며 간이 제대로 안되어 있음을 기계적으로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역사는 승자들 기록이기도 하지만, 살아남은 패배자들의 자기기만과 연민이기도 하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삶의 진실이 주는 혼란 속에서 토니는 첫사랑을 공유했고, 경외심을 느꼈으며 충격적으로 삶을 마감한 친구 에이드리언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뭣 하나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노후를 보내는 토니에게 어느 날 500파운드와 함께 이른 나이에 자살한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 유산으로 상속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서류가 도착한다. 그로 인해 생전에 마주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끔찍한 기록을 마주하게 된다.

 

  심술 고약한 노인이 돼버린 토니는 한 때 첫사랑의 어머니가 소유했고 지금은 첫사랑 베로니카가 소유하고 있는 일기장을 받아내기 위해 그녀에게 접촉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유난히도 까다롭고 괴팍한 한 여자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불태워버린 베로니카는 “.... 그래서, 예를 들면 토니가”로 끝나버리는 일기장 사본 한 장을 그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 봉투 안에는 젊은 시절의 토니가 자격지심을 느껴 떠나보낸 베로니카가 미숙하고 우유부단하던 자기와 달리 늘 진지한 자세로 삶을 조망했던 친구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자 열등감과 치기 어린 마음에 보낸 편지 사본이 동봉되어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 편지에는 인간 말종의 오지랖과 새롭게 시작한 커플에 대한 끔찍한 저주가 담겨 있었다. 그 기록은 견고하게 자리매김 한 그의 삶의 이야기에 균열이 일으키기 시작한다.


  화염에 사라진 에이드리언의 일기를 상상력에 기대 되살려 본다.



  ..... 그래서, 예를 들면 토니가, 베로니카와의 관계에서 조금만 더 마음을 열어보였다면,

  모처럼 그녀 맘에 드는 곡을 골랐다는 기쁨에 심취한 나머지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는 춤을 추며 소소한 성취감에 빠지는 대신, 머리칼이 얼굴을 덮은 채 허공으로 솟구치며 어쩌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춤을 추고 있는 여자 친구의 심정을 읽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녀의 미스터리 한 삶에 대한 키를 쥐고 있을지 모를 그녀 가족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불행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쉽게도 그는 그녀 가족과의 관계를 발전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았고 그들을 자기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다른 세계 사람들로 본 것 같다.
 
  6.1 그런 토니 안에서는 불안정한 의식과 감정이 서로 대립하며 충돌을 잃으키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자기와 가까워질 수 있고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강박적 사고와 '과거라면 자신의 거대한 케리어를 들어 이층 침실로 옮겨야 할 사람은 포드씨가 아닌 웹스터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불안 말이다.

  매트 위로 케리어를 던지며 “한 살림 차려온 것 아냐?”라며 포드씨가 무심코 던진 농담에 그 무의식이 의식화되고 수치심과 함께 불안이 올라왔을 것이다.

  그런 심리가 불러오는 끔찍한 결과는 자신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상대에게 입증하려는 강박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그게 실패했을 때 따라오는 자괴감 역시 사소한 부산물로 치부하기엔 영혼을 잠식해 가는 힘이 적지 않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피해의식은 20-30년대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양육되고, 50년대 사고방식을 지닌 채 격동의 6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피하기 힘든 문제이기도 하다.


6.2 ‘관계와 책임 공식’에 대입해 볼 때, 지나친 그의 자기 방어적 성향을 오롯이 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합당한 일일까. 어쩌면 그 성향은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보다는 그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친구와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부모의 양육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너는 그 애만큼 똑똑하진 않아”라며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는 부모 앞에서 억울하지만 마땅히 반박할 할 말을 못 찾아 답답해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토니는 주위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평가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자의식은 괜히 마음을 열었다 상처받을 위험이 있는 행동(예를 들어 의존과 같은)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친밀해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기 쉽다. 학습된 무력감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행동은 외부환경과 별개로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모든 행동은 상대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법이다. 이 지점에서 정확한 책임 분배가 곤란해진다.
 
  6.3 다행히도 지금 토니는 가공할 힘으로 자신을 누르고 통제해 온 사회와 부모를 떠나 자유와 젊음 그리고 기회의 땅인 미국에 머물고 있다. 아마도 그는 평생 자신을 거미줄처럼 옭아매왔던 시선에서 벗어나 진공상태가 주는 짜릿함을 만끽하고 있을 거다.

  바라기는 새로운 환경이 제공하는 안전한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관계와 책임의 공식’을 검증해보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렵긴 하겠지만 익숙한 사고의 관성에서 벗어나 자기 자아로 좀 더 깊이 들아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자유로운 '선택'과 '결과'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책임' 간의 관계를 실험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이 경험이 가져다주는 선물인 성장과 함께 보다 진실한 삶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6.4 그 경험이 그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까. 두 가지로 가정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기 보호적이고 책임 회피적인 태도로 인해 좁아진 시야가 확장되며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성장의 방향.

  또 하나는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그저 분별없이 소비만 해버림으로써 그의 고유한 성향이 내면에서 옹이처럼 굳어지는 것. 그 경우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겠지만 고착된 특질이 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불화로 냄새를 피울 것이다. 오기, 심술, 수동공격 등.

  그 선택은 온전히 토니의 몫이며 그 책임에서 그가 자유롭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얼마 전 그가 나와 베로니카에게 보낸 편지가 후자에 대한 전조가 아니길 바라본다.


6.5 환영받지 못할 포드가의 일원으로 내가 선택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렇지 않아도 범상치 않은 가족 사슬이 더욱 꼬이도록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물론 그 출발은 은근슬쩍 토니가 내비친 ‘포드가 입장권’ 탓이겠지만, 결국은 내 선택이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베로니카와의 관계도 미스터리를 느낀 지점에서 멈추고 돌아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치즐허스트에 발을 들인 것도 내 선택이고, 베로니카가 품고 있는 수수께끼를 그녀 어머니를 통해 풀어보기로 결정한 것도 내 선택이었다.

  잠시지만 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사라'(한 때의 연인이라고 칭하는 게 그녀를 존중하는 태도일 것이다)가 자기 딸이자 동시에 샘을 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매력적인 젊음을 소유한 여인을 시기하고 그녀 애인마저 가로채버린 행동 또한 전적으로 그녀 책임이라 할 수는 없다. 어떤 면에서는 그녀 역시 서로에게 지나치게 무심한 포드가의 희생양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두고 그녀와 나는 많은 생각과 교감을 나누었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고 행복했으며 충만했다. 지금 와서 후회는 없다.
 
  6.6 책임 사슬 범위를 넓혀보자. 포드가의 비극적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가 등장한 것도 토니 특유의 강한 자기 보호의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만일 치즐허스트에서 사라가 딸 애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보인 수많은 행동 중에서 하나라도 눈여겨봤더라면 주인공은 내가 아닌 토니일 것이다.

  화창한 아침 모두 산책을 나가고 생생한 컬러의 머리띠로 시원한 이마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사라만 남았을 때. 뭉개진 달걀 프라이 모양에 신경을 쓰고, 원하지도 않은 프라이를 하나 더 얹어 주었을 때. 달궈진 프라이팬을 아무렇지도 않게 싱크대에 던짐으로써 젊은 주부의 대범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을 때. 자기 딸이 손님이자 애인인 그를 여자 친구에 대한 배려도 없이 늦잠 자는 센스 없는 남자라고 평가절하했다는 정보를 전했을 때. 결정적으로 그가 떠나던 날 환한 햇살 아래서 등나무에 기댄 채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가라는 건지 말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몸짓을 보냈을 때.

  하지만 그는 포드가 사람들이 자신을 비 호감 덩어리인 데다가 손님이라기보다는 걸리적거리는 천덕꾸러기로 여긴다고 생각한 나머지 두 발을 묶인 채 수조 안에서 요리사의 뜰채만 기다리는 랍스터처럼 허우적대느라 그 어느 기회 하나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이 기록이 역사의 재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위 분석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베로니카의 해석을 통해 재생산된 내 해석임을 밝혀둔다.


6.7 분명한 건 두려움 때문에 토니가 하지 못한 것들을 나는 과감히 선택했다는 점이다. 당시 나는 두려움에 움추러들어 선택을 유보함으로써 얻어지는 안전한 삶 대신 위험을 품고 있지만 내 안에서 올라와 만져지는 충동과 의지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이는 삶에 있어서 내가 노예가 아니라 주인 됨을 선언하는 것이고, 이 태도는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도 변함없이 적용될 것이다.

  두려움에 굴복한 나머지 안전한 삶을 선택헤버린다면 내 안에 존재하는 '노예성'이 나를 무언가에 지배당하거나 종속된 채 살아가도록 만들 것이다. 그 누구도 이 법칙에서 예외가 아님을 발견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남은 나날은 안정보다는 혼란과 함께 끊임없이 몰아닥칠 회한의 풍랑을 항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6.8 어느덧 나는 나를 찾아온 숙명에 대해 결론을 내릴 시점에 와있다. 검증은 충분했고 예외적인 경우를 찾아 떠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생각을 바꿔 예외적인 경우를 기대하며 삶을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삶은 또다시 내게 관계와 관련해 끊임없는 선택을 요구할 것이고, 나 또한 그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연속되는 선택과 만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책임을 놓고 벌이는 공방과 해석. 태생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그 해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모여 확신 속에서 견고하게 굳어지는 거, 그 우물이 우리 삶이다. 불행한 것은 세월이 우리를 성장케 한다고 하더라도 그 틀을 벗어나 삶의 실체를 그대로 직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에 대한 구원은 없어 보인다.
 
  6.9 조금은 착각하며 살아갈 때 삶은 행복해진다. 그런 이유로 내 삶 가운데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왜곡 없이 직시하며 관찰해 온 내 삶의 단편을 나의 마지막...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고 은퇴한 노인 토니 웹스터를 주인공으로 기억과 삶의 진실을 찾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기억의 본질이라는 큰 주제를 이야기한다.


 "...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 줄 것도 줄어들고,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깨닫게 되는 것. 부단히 기록-말로, 소리로, 사진으로-을 남겨두었다 해도, 어쩌면 그 기록의 방식은 엉뚱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인이다.'"


  주인공 토니의 기억과는 다른 내용을 닮고 있는 기록, 그릇된 인식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반전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당신의 기억과 그 기억이 만들어내 삶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묻는다.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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