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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Oct 21. 2021

창문을 열 수 없는 집에 혼자 사는 여자

다락방의 미친 여자

자기가 예민한 거야. 


  올해로 15년. 나는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여자'라는 단어가 마치 대명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혼자 사는 여자는 뭐가 특별한 걸까. 아니, 혼자 사는 여자는 특별하다기보다. 불안하다.  

  혼자 사는 여자에게 안전한 동네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15년간 자취를 하면서 시끄러운 동네, 조용한 동네, 빌라, 오피스텔을 다녀보았지만 그 어디서든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다르지 않았다. '혼자'인 '여자'는 필연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공포' 잘 만든 공포영화의 홍보문구 같은 이 문장은 나에게 실제 하는 감각이다. 


  나는 집 안에서도 최대한 옷을 챙겨 입고 있는다. 창문은 절대로 한 뼘 이상 열지 않고, 한 밤중에도 커튼을 절대 걷지 않는다. 택배는 도착하는 즉시 집 안으로 들이고 택배 송장은 따로 떼어 읽을 수 없게 처리해서 버린다. 택시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서 걸어 들어오고. 귀갓길에 누군가 집 앞에 서 있으면 바로 들어가지 않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들어간다. 비밀번호는 최대한 길게 설정해 두었고 현관문 훔쳐보기 구멍은 밖에서 빛이 보이지 않게 따로 처리를 해 두었다. 나는 예민하다. 예민하게 살고 있다. 


  어느 밤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늦은 새벽 누군가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 확인해 봤더니 화면 가득 까만 어둠만 가득했다. 최대한 애써서 굵은 목소리를 내며 '누구세요?'라고 묻자 화면 속 그 사람은 '나야'라고 대답했다. 나라니? 그 화면 속의 남자는 내 연인도 아니었고 내 친구도 아니었고 가족도 아니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사람은 '나야'라고 말하고 까만 어둠 속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예민하게 촉을 세우고 문에 귀를 대고 들었다. 문 앞의 인기척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없는 듯 한 참을 서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대낮에도 누가 초인종을 누르면 답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약속 없이 집으로 찾아올 사람은 없다. 집 문 앞에서 나를 찾는 저 사람은 분명 타인이고 높은 확률로 내가 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사람이다. 문을 두들기고 초인종을 누르고 'XX 씨!'라고 외쳐도 나는 답하지 않는다. 인기척을 없애고 조용히 그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 


  내 집을 갖지 못한 나는 가끔은 집주인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때도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랫집에 물이 샌다고 하는데, 그 집에 확인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비밀번호 좀 알려주세요." 내가 집에 없는데 비밀번호를 알려달란다. 들어가서 확인을 하겠다고. 가족같이 생각하라고. 온갖 사적인 것들 뿐인 내 집에 낯선 남자가 나 없이 들어간다는 것은 불쾌함을 넘어 공포다. 내가 돌아갔을 때 어딘가에 숨어 있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초소형 카메라라도 설치된다면? 나의 사적인 물건들을 그 사람이 보거나 만진다면? 이런 고민을 당시의 연인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는 "자기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했다. 내가 예민한 걸까? 하는 생각에 나는 집주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줬었고 그날 돌아온 집에서 한참을 괴로웠다. 집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내가 나갈 때와 달라진 것은 없는지 남이 보기에 이상할 것은 없었는지. 내 집이 낯설고 두려운 느낌에 한참을 괴로워했다. 


나는 더 예민해야 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타인이 있다는 감각 역시 공포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 이 창문 밖으로는 사람이 겨우 서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이 서 있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 있다. 어느 날 밤 이 창문 아래에 놓인 침대에 누워 친구랑 통화를 하던 중 누군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잘못 들었나 보다' 했지만 아니었다. 창문을 두드리던 사람은 2중으로 된 바깥 창문을 열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저기요. 문 좀 열어 보세요."

나는 서둘러 안 쪽 창문을 닫고 물었다. 

"누구세요?"

"저기, XXX호 아닌가요? 문 좀 열어 보시죠?"

술이 좀 취한 젊은 남성의 목소리. 창 아래 공간에 애써 올라서서 내 방 창을 열며 옆집 호수를 대며 말을 거는 알 수 없는 타인. 뭐라도 대답해야 할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XXX호 아니고요. 거기 어떻게 올라가신 거예요? 가세요."

"문 좀 열어 보세요."

계속되는 문을 열려는 시도에 너무 당황했지만. 이럴수록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창에는 방범창도 달려 있으니 들어올 수는 없다. 바깥 창문을 열더라도 안 쪽 창문을 열 수 없다. 

"됐고요. 지금 거기 서 계신 거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그대로 계세요."

최대한 단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창 너머의 타인은 '경찰에 신고' 한다는 이야기에 놀랐는지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옆집 사는 친구를 놀려주려는 친구였나 보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서 놀라게 해주려고 그랬겠지. 그런데 새벽 1시 반에?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창 너머에? 그래 애쓰면 올라설 수 있으니까. 근데 창을 열려고 했다? 내가 만약 잠들어 있었다면? 창문이 다 열릴 동안 내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면? 창에 방범창이 없었다면? 나를 해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더라도 내 공간에 무방비 상태로 잠들기 전의 내가 보였다면? 

  나는 더 예민했어야 했다. 창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통화하느라 듣지 못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어야 했다. 나는 내가 멍청했다고 부주의했다고 나를 탓했다. 물론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 해를 끼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매우 불쾌하고 공포스럽다. 혼자 사는 여자의 공간을 낯선 이에게 보이는 것. 그것은 공포다. 그 후 몇 시간, 잠들 수 없었다. 나는 더 예민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공간을 관리한다. 이 공간 안의 모든 것을 내가 알고 있어야 한다. 낯설거나 새로운 것이 없어야 한다. 이 공간의 배치, 빛, 소리 등이 내가 아는 그것이어야 한다. 어느 날 내가 알던 것과 달라져 있다? 그럼 그 순간부터 나의 공포는 시작된다. 

  여자가 혼자 산다. 는 사실 하나 만으로 많은 범죄의 타깃이 되는 세상이다. 택배 박스 송장을 보고 음란 전화를 거는 남자의 이야기는 방송에 많이 나왔고. 늦은 밤 귀가하는 여자를 쫓아 들어가 범죄를 저지른 사건 역시 유-명하다. 현관이나 베란다에 남자 물건을 놓아두라느니, 택배를 받을 때 남자 이름으로 받으라느니 등의 여자 자취 꿀팁! 은 얼마나 비루한지. 날씨 좋은 날도 무거운 커튼을 걷지 못하고 커튼 사이로 겨우 빛과 바람을 봐야 하는 예민한 여자들. 우리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자기가 예민한 거야." 

그래. 나는 예민하다. 가끔은 더 예민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예민하게 만든 건 누구야?


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에 선정, 지원을 통해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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