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아리 Jan 01. 2023

여전히 예뻐서_1

                             

S#1  재정의 아파트, 놀이터(오후)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아파트 단지 내 정자에 할머니 세 명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할머니 1/

그래서, 돈은 넉넉히 준대요?


할머니 2/ 

카드 한 장 주면서 생활비 하라고..

돈 버느라 등골 빠지는 거 뻔히 아는데 따로 챙겨 달란 소리 어떻게 해요.


정순(F)/    

아니,  그게 무슨 부처님 같은 소리야.     


일동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선글라스에 챙 넓은 왕골모자 쓴 정순 손에 커피를 들고 서 있다.


정순/    

(선글라스 벗으며) 생활비 카드는 말 그대로 장 볼 때 쓰는 거지,

 계산할 때마다 띵동 띵동 문자 갈 텐데.  파마라도 한번 할라치면 어디 눈치 보여서 하겠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씩 돌리며) 시작할 때 수고비 얼마 달라, 똑 부러지게 하셔야 해요.


할머니 2/    

(입모양으로) 누구?


미자/

(소곤대며) 우리 동네 할마대장.

 올해로 6년째 애 키우는 중인데 혹시라도 애 돌보다 무슨 문제 생기면 저 형님한테 물어보면 돼요.


정순/    

(커피 한 모금 마시고)아. 이제 살겠네.

주기적으로 어디가 아프네 쑤시네 우울증이 오네 엄살도 좀 떠시고. 내가 누누이 이야기하잖아.

세상에 공짜 없는데 부모 자식 간에 예외라는 법 있나. 근데 지금 몇 시지?


미자/    

(휴대폰 보며) 4시 20분, 올 때가 다 됐는데...     


아파트 정문에 노란 유치원 버스가 들어서고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스를 향해 잰걸음으로 가는 할머니들.     


S#2 재정의 아파트, 정문(오후)


유치원 선생님의 지도아래 아이들이 하나 둘 버스에서 내린다.

환한 미소와 다정한 말투로 반갑게 아이들을 맞이하는 할머니들.

마지막으로 흰 피부의 통통한 유민이 내린다.    

 

정순/    

우리 강아지~ 재밌게 놀았어?


유민/    

할머니~ 아이스크림.


정순/    

덥지? 얼른 집에 가자. 으이그 땀 좀 봐. (할머니들 향해) 들어가세요~     


할머니들과 눈인사를 나눈 후 뒤돌아 가는 정순     


미자/    

언니!


정순/   

(뒤돌아보며) 어?


미자/    

(주먹 들며) 파이팅!!     


정순은 미자를 향해 말없이 주먹을 들어 보인다.     


                    

#타이틀 : 여전히 예뻐서



S#3. 재정의 집, 거실 (오후)


유치원복 입은 채로 TV만화 보며 아이스크림콘 먹는 유민. 녹은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정순이 물티슈로 바닥과 유민 얼굴을 닦는다.     


정순/

할머니 좀 봐. 왜 묻히고 먹고 그래 다 큰 어린이가..     


물티슈 버리러 가는 정순.      


유민(F)/

할머니~     


정순이 돌아보면 아이스크림으로 입 주변을 하얗게 칠한 유민이 개구지게 웃고 있다.     


정순/

아이고 정말! 이리 와. 목욕하자      


유민은 아이스크림 국물을 뚝뚝 흘리며 집안 곳곳으로 도망 다니고 쫓아다니다 지친 정순은 소파에 널브러진다.     


S#4 재정의 집, 주방(밤)


식탁에 잡채, 불고기, 생선조림 등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있다.

앞치마 입은 정순은 음식 개수를 세 본 후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국냄비 앞으로 가 간을 보고 고개 끄덕이며 가스레인지 불을 끈다.        

     

정순/

(찌개 푸며) 저녁 먹자~ 유민아. 엄마 아빠 식사하세요 그래.     


주방에 들어서며 식탁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재정 혜경 유민     


재정/

이게 다 뭐예요? 오늘 누구 생일인가?


유민/    

오예! 난 불고기~


정순/

어서 앉아. 간만에 실력발휘 좀 했어.     


맛있게 먹는 유민과 재정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정순.

젓가락으로 깨작거리고 있는 혜경과 눈이 마주친다.      


정순/    

왜, 입맛이 없어?


혜경/    

아니요 맛있어요.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저... 어머님, 진작 말씀드리려 했는데..

저희 식비가 너무 많이 나가는 것 같아요.

저나 유민 아빠는 집에서 안 먹는 날도 많은데 필요한 만큼만 그때그때 장 보세요.

냉장고에 너무 재료 쟁이지 마시구요.      


잠시 말문이 막힌 정순     


정순/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 며느리 알뜰한 것 좀 봐. 그래 알겠어.


재정/

이 사람이 또 한 알뜰하지. 똑순이야 똑순이.


재정에게 눈짓하고 머뭇거리는 정순     


정순/

저기, 나 할 말이 있는데..


재정/

(반찬을 입에 넣으며) 뭔데요?


정순/

나, 유민이 그만 봐야겠어.


혜경/

어머님!


정순/

자그마치 6년이야. 나도 할 만큼 했고, 유민이 다 컸으니까 아침저녁 등하원 도우미 구하면 되잖아


숟가락 내려놓고 자세 고쳐 앉는 혜경.     


혜경/

어머님, 힘드신 거 잘 알죠. 저희가 더 신경 쓸게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건 맘에 담지 마시고, 별 일 아닌데 제가 그만..


정순/

그것 땜에 그러는 거 아니다. 생각하던 거야.


재정/

엄마, 갑자기 이러시는 게 어딨어요.

이 사람 승진 코앞이고 나는 겨우겨우 자리 유지하고 있는 거 아시면서..


정순/

뭘 그렇게 엄살부터 피워. 사람 구할 때까지 기다려 줄 테니까 천천히 알아봐. 알았지?      


일어나는 정순.

혜경은 재정에게 입 모양으로 ‘왜 저러셔’라고 묻고 재정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S#5 재정의 집, 정순 방(밤)


미자와 휴대전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정순.     


정순/

“미션 완료”


미자/   

“난 이따가 애 재우고 하려고. 떨려”


정순/

“입 떼기가 어렵지 별거 아니야. 파이팅!”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정순.     


정순/ 

응, 나야. 나 포함해서 두 사람. 그래 내일 봐.     


전화 끊고 다부지게 입술 다무는 정순.


 -2화에서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