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아, 다음엔 나도 같이 놀자
2023년 5월 3일,
딸의 11살 생일이자 나의 10번째 출산기념일이다.
(딱히 날 위해 뭘 하진 않지만 매년 그렇게 이름을 붙인다)
딸은 코로나 초창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탓에 그 동안 학교 친구를 초대하는 생일파티를 해본적 없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난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난 딸에게 미리 큰 소리를 쳤다.
"친구들 마음껏 초대해! 엄마가 생일 파티 열어줄게!"
고객님의 요구에 맞춰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요구는 간단 명료했다.
- 집은 화려하게, 음식은 참석자의 기호대로, 알아서 놀테니 엄마는 절대로 끼지 말것!
생일 2주 전부터 딸의 요구를 반영해 인원, 메뉴, 집 꾸미기 등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생일 당일!
소파 위에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생일축하 현수막을 걸고, 복도 벽에는 화려한 수술을 달고 가랜더도 걸었다. 그리고 주요 사항인 복도 바닥을 풍선으로 채우는 일도 완수 했다.
드디어 오후 세시다, 집 근처 편의점 앞에 모여 집으로 오기로 한시간이다.
딸과 친구들을 기다리는데 묘한 기분이다.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아이들이 좋아할까?'
괜히 남편과 싱거운 대화만 나눴다
"나중에 남자친구나 결혼할 사람 데려오면 더 떨리겠지"
곧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입장했다.
약속이나 한듯 바닥 풍선을 신나게 걷어차면서 들어오는 아이들.
현기증 나도록 열심히 불어놓길 잘했다 싶다.
"안녕, 어서와! 반가워!"
나와 남편이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반겼지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듣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내가 낄 수도, 끼어서도 안된다는 촉이 왔다!
귀만 거실에 남겨놓은채 방안으로 피신했다.
아이들은 아이브의 최신곡 'I AM' 을 흥얼거리더니 이내 합창을 하다가
자기들끼리 장기자랑을 시작하더니 선물공개식까지 거행하신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 괜히 불편한 마음이다. 거실에 나가면 아이들이 불편할 것 같고 방에 계속 있자니 모양새가 웃기다.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 주문한 음식을 픽업하려면 한시간이나 남았지만 미리 자리를 비켜주는게 피차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최신곡 안무를 섭렵한 친구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도록 음악 어플은 세팅해주고 나왔다. 카페에서 한 시간을 보낸 뒤 미리 주문해놓은 메뉴를 순서대로 픽업했다.
- 피자마루의 치즈폭탄 피자, 마라탕 1단계, 걸작 떡볶이의 로제떡볶이
집에 도착하니 5시 30분.
매너있게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갔는데 어째 조용하다.
딸이 말했다
- "엄마, 친구들 집에 다 갔어. 가야한대"
'세상에, 잔뜩 주문한 음식은 어쩌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식탁밑에 웅크린 한 녀석이 보였다.
귀여운 고객님과 친구들이 엄마, 아빠 놀래키려고 이벤트를 준비했단다.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장난꾸러기 11살 손님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동안 우리 부부는 또 다시 방으로 피신했다.
밥을 먹는건지, 노래를 하는건지, 춤을 추는건지 끊임없이 노래와 소란스러움이 들려온다.
아이들이 자유분방한 사생활을 엿보는데 기분이 묘하다. 괜히 남편과 싱거운 소리나 주고 받았다.
"우와, 어른보다 더 잘논다. 그치?"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딸의 방에 옹기종기 모여 '당연하지 게임' ,' 마피아 게임' 등을 하다 놀이터에 나가더니 다시 들어와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을 먹고 '풍선 터트리기' 로 생일파티 엔딩을 장식했다. 이날 아이들은 나중에 파자마 파티를 하자고 결의를 다진 뒤 8시에 헤어졌다. 참, 우리 부부는 고객님의 교우관계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친구들을 집까지 데러다 주는 안심 귀가 서비스도 제공했다.
메뚜기떼가 휩쓴듯한 집안을 둘러보며 딸에게 물었다.
- "오늘 어땠어?"
- "너무 좋았어 최고였어!"
이 보다 좋은 후기가 있으랴, 이 정도면 목표 달성이다!
아이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찍은 생일파티 사진을 보는데 보고 또 봐도 귀엽고 예쁘다.
내가 아는 대한민국 초4 중에 가장 잘 노는 이 친구들이랑 나도 다음에 같이 놀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