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회사에 휴직 의사를 알리면 돌아오는 질문은 당연히 ‘왜’이다.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준비한 답을 즉각 내놓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얼마나 많이 손이 가는 줄 아시잖아요. 유치원 보낼 때는 남편과 아침, 저녁을 분담해서 그나마 버텼지만 초등학생은 1시쯤 하교를 한다고 하니 답이 없네요. 물론 돌봄교실을 이용하거나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처음 학교생활을 시작하는데 엄마 아빠가 퇴근할 시간까지 학원까지 여러 개 다니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사실 그동안 저희 애가 유치원에서도 꼴찌로 하원을 했는데 1학년 동안은 제가 좀 도와주고 싶어요. 말이 초등학생이지 아직 어린애잖아요. 혼자서 집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와서 간식 챙겨 먹기만 해도 한시름 놓을 것 같아요. 저도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랍니다. 남편이요? 남편은 올해 휴직이 힘든 상황이라 상의 끝에 제가 하기로 했어요. 참, 저희는 양가 부모님 도움 없는 육아 독립군이에요.
조심스러운 말투와 눈빛으로 막힘없이 쏟아내는 내 TMI에 다행히 듣는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
- “그런데 입학은 3월인데 왜 2월이야?”
혹시나 했던 질문이 역시나 나왔다.
- “입학 전에 준비 좀 하려고요. 회사 다니느라 신경을 못 썼더니 부족한 게 많네요. 하하”
돌이켜 생각해 보니 대답이 좀 비겁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식보다 한 달 먼저 휴직을 시작한 진짜 이유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편과 나와 아이가 서로 부대끼며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보고 싶었다. 12년 동안 TV 방송작가로 일했던 나는 3년 전에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다. 말이 쉬워 이직이지 프리랜서 방송작가가 회사원이 된다는 건 일상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과 같았다.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구르며 잔뼈가 굵은 메인작가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신입이 되었고 주어진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느라 몸도 마음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게다가 하루에 2시간 반 넘게 운전해야 하는 탓에 집에 오면 늘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집에서의 나의 빈자리는 남편이 대신 채워줬다. 당시 5살 아이의 등원과 하원, 아침밥과 저녁밥은 물론이고 놀아주고 씻겨주고 재워주는 모든 일을 남편이 도맡았다. 그 생활이 최근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한 후 우리 부부는 사소한 일에도 언성이 높이는 일이 많았다. 어른 대화에 참견할 만큼 자란 아이는 유치원 선생님이 된 것 마냥 우리 둘을 화해시키기에 바빴다.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말이다.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딸은 아빠 껌딱지가 되었고 딸에게 엄마는 ‘피곤하니까 쉬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휴직을 선택한 이유가 딸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언젠가부터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기보다는 귀찮아할 때가 많았고 '우리 집 라이프'에서 살짝 한걸음 뒤로 빠져있을 때가 많았다. 이 시대의 외로운 아버지, 아니 외로운 워킹맘으로 중년을 맞이할 생각은 1도 없었기에 서서히 위기감이 몰려왔고 긴 고민을 한 거에 비해 선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제일 신난 건 딸이다
-“엄마 회사 방학한 거야? 그럼 나도 유치원 쉴래!”
(말이 씨가 된 걸까? 따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일주일 넘게 유치원 결석 중이시다)
육아휴직을 할 때 어느 날 갑자기 통보하듯 회사에 알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주변 동료나 상사에게는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미리 귀띔을 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관리자 입장에서는 업무분장이나 인력 재배치를 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12월쯤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사에게 휴직 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1월 초에 정확한 휴직기간을 알리고 중순에 행정적 처리를 끝냈다. 많은 휴직 선배들을 통해 휴직 자체보다 휴직을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걸 봐왔던 터라 큰 잡음 없이 휴직처리를 하는 일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휴직 절차를 다 끝냈을 무렵에 또 질문이 이어졌다.
- “언제 돌아올 거야?”
- “정말 1년 다 쉴 거야?”
- “휴직 동안 뭐 할 거야?”
내 육아휴직은 가장 큰 목표는 내가 다시 딸의 절친이 되는 거다. 요즘 관심사와 고민을 나누고 유행하는 놀이도 같이 하는 하는 친구 말이다. 그래서 딸의 그림 속에서 다시 주인공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다. 두 번째 목표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거다.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되찾고 싶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니 첫 단추는 성공적으로 끼운 셈이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애가 학교생활에 적응만 잘하면 당장이라도 복직하고 싶죠. 대출 때문에 마이너스거든요.”
휴직 결심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마통 증액'인 생계형 직장인의 육아휴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