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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아리 Mar 05. 2020

집콕

- 이 곳은 요양원인가 합숙소인가

원래대로라면 초등학교에서 설레는 첫 주를 보내고 있어야 할 딸은 하루 종일 내복 차림으로 소파에 붙어있다. 코로나로 전국의 모든 학교의 개학, 입학이 3주나 미뤄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방학이 생겨버렸다.     

전 국민이 당황스러운 와중에 우리 집에서 가장 당황한 사람은 바로 나다! 나의 육아휴직을 이렇게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 등교 후 동네 도서관에 가서 브런치 글을 쓰려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매 끼니 챙기느라 하루 중 주방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면역력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니 먹는 걸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남편과 아이에 나까지, 삼식이 셋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나로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냉장고 안 식재료의 종류와 양을 모니터링 해 어떤 조합으로 무슨 음식을 차릴지 생각하느라 내 두뇌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사태가 그나마 덜하던 2주 전 주말 아침에 마스크와 손 소독제로 무장하고 나갔던 마트 방문을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모든 것을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다음날 재깍 오던 배송도 이제는 사나흘씩 걸리니 남은 식재료를 잘 파악하고 있다가 소진되기 이틀 전쯤에 인터넷 장보기를 해야 한다. 핸드폰 보는 시간이 늘어난 탓에 각 쇼핑 사이트 별로 대문에 걸어놓는 ‘타임특가’, ‘오늘만 할인’ 등 솔깃한 문구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내 손가락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거리를 사들이고 있다.    

 

요란하게 장을 봐서 거창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세 식구 입맛에 맞춘 집밥이다. 오늘 아침 메뉴는 프렌치토스트였고 점심 메뉴는 양배추쌈과 달래장이다. 저녁 메뉴는 아직 미정이다.


이런 시국에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운동인데 집콕이 길어지면서 활동량이 거의 없다 보니 그나마 있던 소박한 근육들도 소멸될 지경이다. 지난주부터는 볕 좋은 시간에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탑재하고 집 앞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앞뒤 사람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걸으면서 신선한 공기 마시 햇볕을 쬐면 나름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아이는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나는 빨리 걷거나 느리게 뛴다. 맞은편에 걸어오는 사람이 없으면 슬쩍 마스크를 내려 한껏 공기를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하다. 식사와 운동까지 신경 써서 가족 건강을 챙기는 게 보람되고 즐겁다가도 이내 꼬인 심보가 터질 때가 많다. 자고 일어난 차림 그대로 좋아하는 역사 만화책만 주야장천 읽는 딸을 보면 정말 저렇게 만화책만 읽어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결국에는 ‘피아노 연습했니?’, ‘공부 좀 하자’, ‘덧셈 뺄셈은?’ 이런 잔소리가 입 밖에 나오고야 만다. 내가 종종거리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무언가를 하는 걸 봐야 내 직성이 풀리는 거다. 써놓고 보니 나도 참 별로다.     


이틀 전 산책길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세요? 00 이의 초등학교 담임입니다”    


세상에나,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아이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과의 첫 통화는 마치 얼굴도 모르는 소개팅 상대와의 통화처럼 설렘과 수줍음을 속에 무사히 끝났다. 선생님은 내 속을 꿰뚫어 본 것처럼 내 안에 꿈틀대는 불안감을 잠재워 주셨다.    


- “그냥 마음껏 쉬고 학교에 오면 됩니다. 1학년은 별 거 없어요. 화장실 혼자 가고 물병 뚜껑 잘 닫는 연습만 좀 시켜주세요. 앞으로는 이렇게 집에서 오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을 텐데 마음 편하게 잘 챙겨 먹고 푹 쉬고 오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집콕이 장기화되면 집집마다 매일 크고 작은 전쟁이 발발한다는 걸 선생님도 아시는 걸까? 이렇게 시의적절하게 전화를 주시다니, 뵙기도 전이지만 느낌이 참 좋다.     


- "담임 선생님이 밥 잘 먹고 푹 쉬고 오래"


- "선생님이랑 통화했어?"

    

- "응 선생님이  화장실 가고 물병 닫는 것 연습하래"


- "나 혼자 잘하는데"    


- “알지~ 그런데 선생님 목소리가 진짜 예쁘고 상냥해”


- “응”    


아이의 아까보다 더 힘차게 킥보드를 굴리며 저만치 앞서 나간다. 다니던 병설유치원은 선생님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못한 채 갑작스러운 종강을 한 데다 초등학교 입학은 미뤄진 서글픈 현실이지만 학교는 쉼 없이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이도 나처럼 기분이 좋은가보다.


-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선생님 말씀대로 더 열심히 뒹굴거리고 놀아보자.'


처음 학교 입학이 1주 연기된 후, 추가로 2주 더 연기한다는 정부 발후에 지역 맘 카페에 들어갔는데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 ‘우리 모두 힘내요, 아직 66끼가 더 남았어요’    


푸학, 공감의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글 밑으로 줄줄이 달리는 댓글을 읽다 보니 묘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5일을 기준으로 초등학교 입학까지는 51끼가 남았다.

이 시간에도 집밥 전쟁을 치르고 있을 주부들과 심심함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어린이들 모두 모두 힘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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