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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 살 선생님 Oct 15. 2021

어린이집 가기 싫은 날

네 살 아이의 아침일상


"와! 이제 누나, 형들 학교에 가네?"

"어! 그러네. 이제 어린이집 들어가자."


아침 8시 즈음, 아이와 내가 어린이집 놀이터에 앉아 삶은 고구마를 아침 삼아 먹으며 나누는 대화다.

그렇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네 살 남자아이,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다.


다소 평범하고 정상적인 저런 대화는 아이가 기분이 좋거나 혹은 아침에 일어난 뒤 충분한 시간을 보낸 경우에 나눌 수 있는 대화다. 종종 새벽에 일어나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장난감을 쏟아부으며 충분히 놀이를 한 경우엔 기분이 좋아 춤을 추다시피 어린이집에 등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 아이는 대체로 엄마가 일하러 학교에 간다는 것을 가뿐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아무도 없는 어린이집에 1등으로 등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꽤나 어른스럽게 수긍하는 편이다.


한동안 아이가 엄마의 학교에 따라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한 적이 몇 번 있다. 여름방학 때 갑자기 처리할 업무가 있어 학교에 잠깐 들렀다. 이때다 싶어 아이를 데리고 엄마가 일하는 교실, 교실의 형과 누나들의 책상, 학교에서 기르는 염소와 닭과 병아리, 그리고 운동장을 보여주며 여기서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엄마가 아침에 시간 맞춰 가야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한 것은 우리 아이의 어린이집이 8시에 아이의 등원을 허락해주는 어린이집이라는 사실이다. 아이가 부족하다는 요즘, 마음만 먹으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을 줄 알았고, 엄마가 아프셔서 어린이집이 아니면 복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9 to 6인 보통의 직장과 달리 우리의 하루는 아이들의 등교시각에 맞춰 8시 30분에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8시에 등원해야만 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만족하는 어린이집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머니, 어린이집 입소 순서가 되어 전화드려요. 아이 등원과 하원 시각이 언제쯤일까요?"

"제가 출근해야 해서 8시쯤 등원해야 해요."

"그러면 어머니, 우리 어린이집은 8시 등원 아이를 받으려면 선생님 한 분을 새로 배치해야 하니 입소대기를 취소해주시겠어요?"

"....."


우여곡절 끝에 8시에 아이를 맡아주는 어린이집에 입소하고 나서야 마음 편히 복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외동아이라 두 자녀, 세 자녀 가정 아이들에게 해마다 순서가 밀려났다. 결국 차를 타고 등원시켜야 하지만 집과 학교의 중간 지점, 다른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가는 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매일 아침 아이와 등원한다.


하지만 위기는 종종 찾아온다.

아이가 늘 기분 좋기는 어려운 법. 다 자란 어른도 날씨가 좋지 않다거나 아무런 이유없이 출근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아이인들 오죽하랴.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어린이집 문 앞에서 선전포고를 한다.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

특히 마지막에 "싫어!"는 유독 힘주어 강하게 이야기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날은 아침부터 조짐이 보이고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나는 아이의 폭탄선언을 사전에 방지해보려고 등원하는 차에서 온갖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의 기분을 맞추어준다. 그러나 엄마의 노력에도 아이의 기분이 풀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얼른 가야지. 선생님 기다리시는데?"

아이의 폭탄선언에 아무런 타격이 없는 듯 대수롭지 않게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래도 싫어!"

"... 그러면 엄마랑 어린이집까지 달리기 시합하자."

결국엔 어린이집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는 건지, 아니면 정말 달리기 시합에 이기고 싶은 마음인 건지 아이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와다다 어린이집 문 앞에 달려가 씨익 웃어보인다.


8시 15분,

아이를 겨우 달래어 등원시킨 날은 신호만 잘못 걸려도 지각이다. 여유롭게 20분은 걸리는 출근길, 남은 15분을 출근이 시작되는 도심 속에서 질주해 8시 30분 등교시각에 겨우 맞춰 학교에 오면 물 한잔 마실 여유도 없이 아침 독서시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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