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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 살 선생님 Oct 23. 2021

나도 살림을 잘하고 싶다

일하는 엄마의 살림욕심과 베짱이 아빠의 한집살이

나에게 포기가 안 되는 욕심이 하나 있다.

바로 살림욕심

단, 요리는 제외다.


요즘 살림을 잘하는 엄마들의 블로그나 유튜브를 즐겨 본다. 어쩜 그렇게 깔끔하게 살림을 잘하는지.

냄비는 탄 자국 없이 깨끗하고 얼굴이 비칠 만큼 빛이 난다.

주기적으로 세탁조를 청소하여 세탁기를 깔끔하게 유지한다.

집은 슬쩍만 보아도 먼지 한 톨 없다.

침구를 청소하고 매일 베개를 좋은 볕에 말리고 아이가 오기 전에 건강한 간식과 식사를 준비하는 삶.

이런 삶이 왜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아이와 함께 등원하여, 퇴근하자마자 아이아 함께 하원하는,

게다가 하원한 뒤에 저녁 6~7시까지 놀이터에서 어린이집 뒤풀이를 해야 하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와 함께 지내느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8시에 와서 부랴부랴 아이와 저녁을 먹고, 씻고, 조금 놀다 보면 벌써 잠들 시간이다. 우리보다 먼저 집에 와 있던 남편이 저녁식사를 미리 준비해주어 훨씬 수월하긴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빨래

빨래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쌓여서 산을 이룬다.

아이를 키우고 나서 더 그렇다. 무언가를 먹고 나면 옷을 새로 갈아입게 되고 하루에 두 세벌은 우습다.

땀이 많은 열정적인 남편의 옷도 한몫한다.


한 번은 남편과 "양말을 뒤집어 벗는 것"에 대해 거의 토론 비슷한 것을 했다.

시작은 그랬다. 세탁기에서 남편의 양말을 꺼내었을 때 열이면 열 모두 뒤집어져있다. 그냥 훌러덩 벗겨 던져버린 흔적이 역력한 양말 한 무더기. 다 마른 양말을 자리 잡고 앉아서 뒤집어놓자니 너무 화가 났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말 좀 똑바로 벗어서 세탁 바구니에 넣는 게 어때?"

우리가 큰 소리를 내며 싸운 적은 거의 없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따지고 싶은 쪽은 늘 나였고, 성격 좋은 남편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는지, 아니면 없는 척하는 건지 그저 허허 웃기만 할 뿐. 그리고 싸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따지고 싶은 순간에도 감정을 다스린 뒤 좋은 마음으로 말을 건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날도 마음을 다스린 뒤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그냥 뒤집어진 채로 빨고 넣어두면 안 돼?"

남편은 내가 짜증이 난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보기가 싫잖아."

"그냥 넣어두면 내가 뒤집어서 신을게."

"그럼 미리 뒤집어서 내놓으면 안 될까?"

"그냥 신을 때 뒤집을게. 벗을 때 뒤집는건 귀찮아."

"..."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깨끗이 정리한 양말들을 짝을 맞추어 차곡차곡 서랍에 넣어두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렇게 해두면 남편도 보기가 좋을 것이고 꺼내 신을 때마다 기분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돈된 깔끔함을 추구하는 나의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것이, 긴 토론 끝에 결론났다.


나는 큰 서랍 하나를 장만에, 양말이 뒤집어져 있든 짝이 없든 그냥 세탁기에서 나온 그대로 다 담아버리기로 했다. 남편은 이제야 마음에 쏙 든다는 듯 아침마다 열심히 짝을 찾아낸 뒤 뒤집어 신고 출근했다. 내가 사는 집 어떤 공간에 그런 정돈 안된 채의 물건이 있다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절대적 시간이 부족해 양말을 뒤집을 여력이 없는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냥 그대로 넣어두고 뚜껑을 덮어 안 보이게 감추는 것.


설거지

그릇도 항상 깨끗하고 이왕이면 뽀드득하면 좋겠다.

한동안 남편이 설거지를 도맡아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먼저 선뜻 설거지를 맡아서 하겠다며 제안했다. 우리 남편의 성격은 마치 베짱이 같다고나 할까. 나를 도와주고 아껴주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큰 것을 알지만 설거지 같은 일을 깔끔하게,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하기에 적합한 성격은 아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은 최대한 빨리, 신속하게  정확도 70%에서 많아도 80%로 우당탕 해결한 다음 나를 보며 씩 웃어 보인다. 이제 다 했으니 칭찬해달라고 이야기하는 웃음이다.


"설거지 좀 깨끗하게 하면 안 될까?"

"나 깨끗하게 했는데?"

"여기 봐. 아직 덜 씻겼잖아. 그리고 기름도 번들거리고.."

"내가 보기엔 깨끗한데?"

"..."


사실, 설거지를 맡겨두고 나름대로 자신의 몫을 하는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조금 치사하다고는 생각했다. 맡겨두면 그걸로 그만인 것이었다. 내 마음에 들고 안들고는 내가 해결할 문제다. 이 일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한 나는 식기세척기를 장만했다. 식기세척기는 묵묵히 우리 가정의 설거지를 담당해주었고, 그릇을 넣고 버튼만 눌러주면 밤이든 낮이든 따뜻하게 소독된 그릇을 내놓았다. 그리고 남편과 설거지의 성실성 문제로 긴긴 이야기를 나누는 비효율적인 일도 사라졌다.


청소

집은 늘 단정하게 정리해두고 싶다.

과자 부스러기, 알 수 없이 굴러다니는 먼지들.


처음 무선청소기를 장만하고 나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콘센트를 찾지 않아도 된다니. 게다가 청소기를 돌린 뒤 가장 귀찮은 선 정리하기 과정이 생략된 무선 청소기는 정말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무거운 청소기를 들고 30분 정도 돌아다니는 수고마저 덜어보고자 로봇청소기를 장만해보았다.

세상에.

로봇청소기는 우리집 지도를 그리고 예약된 시각에 알아서 청소를 한다. 가끔 양말을 삼켜 멈추어버리거나 현관에 떨어져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 청소기가 삼킬만한 것들만 쇼파위로 올려두고 출근하면 오전 10시 정각, 반가운 알림이 울린다.

"예약된 시각에 청소를 시작합니다."


일하는 엄마의 어찌보면 무모하고 이기적인 살림욕심, 적절한 타협과 문명의 힘을 빌어 어찌어찌 충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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