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3 발표
1.
아주 어려서부터 급 나빠진 시력에
저절로 쓰게 된 두꺼운 알의 뿔테 안경.
국민학교 입학 때부터
‘안경잽이(?)’ 별명은 늘 따라다녔고
체육시간마다 흔하게 하는
발야구나 피구, 배구 등
눈앞으로 날아드는 모든 공들에 겁부터 났다.
대학 시절 소프트렌즈로 잠시 바꿔서
안경과의 결별을 시도했었으나
얼마 후 하필 시험기간 중에
눈에 트러블이 크게 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며시 안경으로 돌아왔다.
결혼 후 라식수술의 기회도 있었고
유명 안과 상담실장 앞에서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뻔한 적도 있으나
그 순간 눈에 칼을 댈 수는 없다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밀려와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 나오기도 했다.
수술할 돈으로 나의 여생은
그냥 안경과 원데이렌즈로 버티리라 했건만
이제 다초점 안경을 줄곧 쓰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거리감으로 인해
투덜거림은 여전하다.
2.
어려서 단골 안경원 아저씨가 하신 말씀.
“너의 도수로 남자일 경우 군대를 못 가.
가고 싶어서 빽을 쓴대도 절대 못 가지 “
그 어린 나이에 눈이 왜 그리 나빠졌을까.
서너 살 무렵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한글을 혼자 떼고
이후 신문이나 동화책들을 들고
어두운 방구석에 혼자 틀어박혀
코 박고 들여다보았다는데.
다른 집 애들은 골목에 나와 뛰놀 시간에
같이 사는 삼촌들, 이모들의 방에서
손에 잡히는 거라면 뭐든 줄줄 읽고 흡수했나 보다.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던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작은 책자던지.
3.
모든 것은 원인에 따른 결과이다.
스마트폰이 나오고부터
그 손바닥만 한 화면 속을
너무 열심히 들여다보았던 모양이다.
굳이 PC를 켜고 마우스를 조작하지 않아도
손안에 들어온 작은 세상은
언제든 들여다볼 때마다 즐거웠고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가졌으며
그 안의 최신 뉴스, 정보, 지식들이
클릭 몇 번 만으로 내 두뇌를 채우는 느낌.
지금은 아이폰의 화면이 커졌지만
초기 아이폰 화면들은 작디작았고
그 속엔 모바일용 화면도 따로 없었으니
밤마다 자기 전 어둠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본 게
‘원인불명의 급성 사시’ 진단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 읽기와도 소원해졌던 시기와도 얼추 맞으니까.
4.
사시 수술 관련 검색을 하면서
소아 사시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이 많다는 현실과
눈 안에 작은 근육들의 방향을
밀고 당겨 조정하는 수술방법에 대해,
그리고 뇌와 연결된 시신경의 이상으로도
사시나 복시가 올 수도 있다는
여러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편 들여다보고 싶은 것만 들여다보면
어느새 굳어지는 시선과
나도 모르게 좁아지는 시야,
고쳐지지 않는 안 좋은 습관들에 대해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본인은 그다지 의식 못하는 사이에
제삼자의 시각에선 외형적으로 확연히 느껴지는
초점이 안 맞는 부분들.
사실은 미세한 각도의 차이지만
수많은 논점과 시각, 비판이 존재하는 시대에
보고자 하는 것만 보려는 노력을 접어두고
넉넉하게 넓은 시각으로 주변을 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던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