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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외적인 성공보다 내적인 성숙이 더 어려운 까닭

- 청년의 중용 읽기

by 김경윤

천하와 국가도 다스릴 수 있고,

높은 벼슬과 재물도 사양할 수 있으며,

시퍼런 칼날도 밟을 수 있지만,

중용은 능히 실천하기가 불가능하다.

(To govern the kingdom may be possible;

dignities may be declined;

naked weapons may be trampled;

but the course of the Mean cannot be attained to.)


우리가 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거대한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리더를 볼 때,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쥘 기회를 미련 없이 버리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을 볼 때, 혹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타인을 구하는 영웅적인 행동을 마주할 때. 우리는 그들의 비범한 지혜와 도덕성, 그리고 용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중용』은 이 모든 위대한 일들을 나열한 뒤, 아주 뜻밖의 결론을 내립니다. 이 모든 것을 해내는 것보다 ‘중용’, 즉 삶의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어렵다고요. 심지어 ‘불가능하다(不可能)’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말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재물을 초월하는 것보다, 죽음을 이겨내는 것보다, 그저 평범하게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이 더 어렵다니,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공자의 이 깊은 통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사회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가정에서는 폭군처럼 행동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뛰어난 ‘지혜’는 가졌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인(仁)’의 균형을 잃어버린 것이죠.

반대로, 세상 누구보다 청렴하고 도덕적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가 곤경에 처했을 때는 원칙만을 내세우며 냉정하게 외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훌륭한 ‘도덕성’은 갖췄지만,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리는 ‘지혜’의 균형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사회운동가가, 정작 자신과 의견이 다른 동료는 조금도 포용하지 못하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거대한 악에 맞서는 ‘용기’는 있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인(仁)’의 균형을 놓친 것입니다.

이처럼 한 분야에서 특출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지혜와 사랑과 용기의 완벽한 균형을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성인(聖人)도 평생을 바쳐 추구해야 할 궁극의 경지라는 것입니다.

‘중용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건넵니다. 외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혹은 영웅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단정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오히려 오늘 하루, 직장에서의 역할과 가정에서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면, 나의 원칙과 타인에 대한 배려 사이에서 고민했다면,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위대한 도(道)를 걷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공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성숙을 위해 한 걸음 더 내디딘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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