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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내 방부터 정리하라

- 청년의 중용 읽기

by 김경윤

먼 길을 가는 것은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To go to a distance, we must first traverse the space that is near;

in ascending a height, we must begin from the lower ground.)


우리는 종종 너무 먼 곳을 바라보다가 발밑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곤 합니다. ‘언젠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인물이 될 거야’라는 거창한 꿈을 꾸면서, 정작 오늘 아침 내 방의 이불 하나 개는 일은 사소하게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용』은 이런 우리에게 아주 단순하지만 깊은 지혜를 속삭여 줍니다. 모든 위대한 여정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邇)’, ‘가장 낮은 곳(卑)’에서 시작된다고요.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고, 태산같이 높은 산도 작은 흙더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걸까요?

아마도 우리는 ‘시작’의 초라함을 견디기 힘들어하는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꿈’이라는 화려한 목적지에 비해, ‘이불 개기’나 ‘설거지하기’ 같은 오늘의 첫걸음은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 초라한 첫걸음을 내딛는 대신, 그럴듯한 계획만 세우며 상상 속의 목적지를 서성이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가장 작고 낮은 곳에서부터 생명을 시작합니다. 거대한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싹을 틔우고, 깊고 넓은 강물도 산골짜기의 작은 옹달샘에서부터 흘러나옵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위대한 여정 역시 가장 가깝고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그 첫걸음을 떼게 됩니다.

『중용』은 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로 바로 ‘가정(室家)’을 이야기합니다. 아내와 자식이 화목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은 것. 이것이 바로 세상을 향한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가장 가까운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를 외치면서 정작 내 가족의 마음 하나 평화롭게 해주지 못한다면, 그 외침은 얼마나 공허할까요?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가장 가까운 형제와 불의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면, 그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없을까요?

이 가르침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퇴근길, 아내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작은 꽃 한 송이를 사는 마음. 주말 아침, 곤히 잠든 남편을 위해 조용히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 동생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형의 기쁨에 함께 웃어주는 마음. 바로 이 작고 따뜻한 마음들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첫걸음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네 침대부터 정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먼 곳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을 잠시 거두어 가장 가까운 곳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어지러운 내 방을 정리하고, 서먹했던 가족에게 따뜻한 안부 문자를 보내는 것. 그 작고 소박한 실천이야말로, 당신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게 하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마법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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