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운 걸 생활 속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반복되는 집안 청소는 단순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4인 가구인 온 가족이 함께 진행하면서 이래저래 불평이 많아졌다는 점이 문제다.
아이들은 힘든 일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떠넘겼고, 일을 적게 했다고 불평하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너는 왜 여긴 안 닦아?”.
“나는 하루 종일 했는데, 너는 그냥 잠깐 도와만 준 거잖아.”.
이런 대화가 늘어나면서 청소 시간은 청소가 아니라 ‘잔소리 시간’이 되어버렸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청소의 과정’이 아니라 ‘청소의 방식’이었다.
청소도구는 정돈되지 않았고, 책임 구역이 불명확했으며, 기준도 없었다.
그래서 매번 미진한 부분이 남았고, 수행한 사람만 손해 보는 구조가 반복되었다.
그때 깨달은 점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대형 프로젝트도 WBS로 나누면서
집안 청소는 감정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가족끼리 청소를 하면 이런 말이 오간다.
“나만 하는 것 같아.”
“힘든 곳은 왜 나한테 떠넘겨?”.
“네가 한 거 너무 대충이야.”
이건 갈등이 아니라 작업 정의와 규칙 부재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직장에서 역할·책임을 정의하지 않은 채 일을 던져놓고
“그냥 하면 돼.”라고 하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영역을 공부하다 보면 'WBS'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Work Breakdown Structure인데 한국말로 번역하면 작업분할구조, 작업명세구조 등으로 표현된다.
먼저 ‘청소라는 활동’을 정의했다.
집안을 정리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거주 환경을 회복하고 기능을 유지하는 관리 행위로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WBS를 다음과 같은 프로세스로 작성했다.
1) 청소 활동을 세분화
지속적 업그레이드, 매번 청소하면서 빠진 부분을 3회 정도 보완하니 완성도 있게 나왔다.
2) 청소 규칙 마련
각자 맡은 구역은 책임지고 마감한다.
완료 후 확인 표시를 한다.
중복 간섭은 하지 않는다.
도구 배치 기준을 유지한다.
일찍 끝나는 사람은 아직 덜 끝난 사람을 도와준다.
3) 청소 활동 분장
가위, 바위, 보로 돌아가면서 한 명씩 해당 활동을 정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활동 시간을 두었다
4) 청소 실시와 체크
청소가 실시되면, 탁자에 체크리스트와 볼펜을 갖다두고, 한개의 한 활동씩 체크해 나갔다
5) 청소 결과 평가 및 상호 피드백
동기부여 차원에서 외식을 한다.
[집안 청소 WBS 체크리스트]
이는 완전히 회사의 프로젝트 흐름과 동일한 구조다.
4. “청소가 빨라졌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청소 시작 후 20분, 작은아들이 말했다.
“아빠, 내 구역 끝났는데 다음은 뭐 해?”.
나는 말했다.
“끝났으면 체크하고 도구 정리해.”
이 과정은 완전히 프로젝트 진행의 느낌이었다.
각자의 작업 완료 → 체크 → 다음 단계 이동.
그리고 놀랍게도
청소는 총 40분 만에 끝났다.
예전에는 1.5시간씩 걸렸었다.
예전 청소는
서운함, 불평, 잔소리가 가득했다.
이제는
“우리가 진짜 해냈다.”
“집이 넓어 보여!”.
“각자 역할이 있으니까 훨씬 덜 힘들다.”
청소가 끝나는 순간 모두가 결과를 공유하며 즐거워했다.
회사에서는 협업을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협업을 배우지 않는다.
집안 청소를 WBS화하는 과정은
가정 내에서도 역할 분담과 책임 문화를 학습하는 훈련이었다.
아이들은 배웠다.
일이 공평하게 나눠질 수 있다는 것.
맡은 일을 끝내는 책임.
완료 후의 성취감.
이는 단순한 청소 이상의 가치였다.
청소는 서로를 지적하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성취하는 시간이 되었다.
매달 반복되는 작은 프로젝트.
하지만 그 결과는 작지 않았다.
집은 깨끗해지고
마음은 편안해지고
가족은 팀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한다.
사실 그 일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비체계적이기 때문에 감정이 개입된 것이다.
집안 청소를 WBS로 만들자.
의미가 바뀌고
관계가 바뀌고
결과가 바뀌었다.
가정은 일하는 법을 배우는 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