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J 이야기
연애라는 게 그렇다. 제대로 해 봐야 환상도 없어진다.
매일 함께 자고 눈 뜨고 하루 일상을 모두 함께하는 부부가 의리나 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건 서로에 대한 환상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연애를 해야 이별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연애를 하다 보면 처음 가졌던 떨리는 마음도 사라지고 결혼은 안 했어도 처음보단 담담한 마음으로 상대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하루종일 그 사람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만나기로 약속하면 무슨 옷을 입을지 몇 번을 고민한다.
맛있는 음식점도 찾아보고 같이 산책할 거리를 미리 찾아본다. 함께하는 시간 내내 도파민이 끝없이 나오고 이 세상에 마치 둘만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손을 잡으면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온몸에 긴장감이 느껴진다.
연애가 짜릿한 느낌을 주는 기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으면 연애가 주는 짜릿함은 길어진다. 특히 상대가 애인이 이미 있거나 결혼했을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더없이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문제는 사랑이 가진 속성인 소유욕을 한껏 채울 수 없으니 늘 허전하고 부족하다.
내가 혼자 차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사람과의 만남은 그 순간부터 불행의 시작이다. 늘 허기지고 배고픈 상태로 연애를 하게 된다. 애인이 있는 상태의 상대는 그렇지 않은 상대의 피를 빨아먹는 것과 진배없고 기혼자가 있는 경우엔 허전함의 깊이는 잴 수조차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마음이 떠났지만 의리로 애인이나 배우자를 떠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땐 불륜의 병은 더욱 깊어진다. 비극으로 치닫는 것은 바로 그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이다. 착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내 숭고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 값싼 쾌락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함께 한 시간이 아까워진다.
어떻게든 누구나 인정하는 순수한 사랑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바람과 불륜의 대상으로 오래오래 유지되게 하는 원동력이다. 빠르게 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내 상상 속 상대는 내가 만들어낸 존재로서만 살아 숨 쉬고 실제 상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뒤늦은 이별을 맞이하게 되면 그래도 다행이다. 작정하고 바람에 맞춰주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상대방은 절대로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지도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만큼 인간의 육신의 욕망은 강하고 잘못된 선택인 줄 알면서도 잘못된 자리로 사람을 이끄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바람과 불륜이 한때는 무척 뜨겁지만 파멸로 끝나는 이유이다.
상대방을 사랑하기보다는 육체적인 쾌락과 탐닉이 그 사람에게 이끌고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기에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가 놓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작정하고 바람을 피우는 것이 오히려 머뭇거리며 썸을 타는 것보다 빠른 이별로 인도할지도 모른다. 뒤늦은 후회와 이별보다는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도울지도 모른다. 문제는 화끈하게 바람을 피우는 사이 나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그나 그녀에게 들키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뜻하지 않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의 항구가 되어주는 안식처를 잃을 수도 있다.
잃고 나서 그나 그녀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고 땅을 치고 후회해도 돌이킬 수는 없다. 또 다른 회한에 젖어 홀로 남게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과 불륜의 강력한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성으로 내 몸을 강하게 붙들어 매고 항구를 떠나지 못하게 닻을 강하게 내려도 그나 그녀를 향한 쾌락의 기억이 온몸에 남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