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생각이 들 때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옛 것이 새로운 문장으로 바뀐다. 사는 게 무감각해질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 영겁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에서 지금 여기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별처럼 떠오르고, 끝을 알 수 없는 집착이 머릿속에서 불안을 증식할 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면 메아리치던 불안의 문장들이 잠시나마 묵음이 된다. 풍경도 책과 같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과 수평선에 몸을 기대고 있으면 괜한 생각들이 나와 함께 어느 순간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고, 정신없이 거리를 걷다 보면 장면과 장면이 이어질 때마다 새로운 추억과 상상이 꽃처럼 터지며 머릿속에서 정원을 이룬다.
제주에서 사려니숲길을 찾았을 때는 초록이 그랬다. 특별히 산만했던 그날에 온통 삼나무로 둘러싸인 사려니숲길을 걷다 보니 시체 같은 생각들을 초록이 덮는다. 온몸에 초록이 흐르는 듯하다. 초록을 뒤집어쓰고 나면 가볍게 몸이 풀린다. 정수리를 시작으로 앞으로는 턱 끝까지 뒤로는 경추를 지나 어깨 끝까지, 생각하느라 긴장했던 몸의 근육들이 풀린다. 생각에 집착하다 긴장했던 몸의 근육들이 풀린다. 호흡의 리듬이 숲과 잎의 초록을 따라간다. 눈을 감아도 초록이 보이고 눈을 떠도 초록이 보인다. 나무와 잎의 간격으로 걷는 사람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서로를 보는 표정에서 초록을 본다. 숲과 초록이 관계를 감싸 안는다.
시야각이 제일 좁은 초록은 시야 중심에서 벗어나면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초록을 보면 눈이 편하다. 불필요한 것들까지 계속해서 눈이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초록은 다른 색보다 감지를 위해 사용하는 세포가 적다. 초록은 그래서 쉽게 바라볼 수 있고 오래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초록 같은 사람이 있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풀꽃처럼 초록 같은 사람을 보고 있으면 결국 좋아하게 된다. 초록 같은 사람은 중심에서 벗어난 것들을 잊게 만든다. 쓸데없는 생각을 걷어주고 마음을 편하게 한다. 언제든 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에서 생애를 시작해 살아간다.
숲길에 앉는다. 초록을 감상한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두 문장의 잔상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언제든 나는 산만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초록이 될 수 있다. 두 문장의 확신이 나를 달랜다. 잔상이 나를 편안하게 하고 확신이 나를 달랠 때 좋아한다는 말을 한다. 좋아하는 것으로 머리를 채울 때 행복하다는 말을 한다. 숲길을 걷고 나면 행복해질 수 있다. 또다시 초록이 가득한 숲길을 걷게 되면 나는 또다시 초록을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초록을 칠하고 다시 덧칠하고 다시 보고 담아내다 보면 언젠가 나도 초록과 함께 생애를 이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식물이 초록이 되는 방식을 배웠듯 언젠가 나도 초록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초록 같은 사람이 그렇게 살았듯이. 그때까지 또 읽고 걷고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