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에게,
와... 1년 뒤로 보내는 건 참 오랜만인 거 같아. 왜냐면 참 1년 뒤는 정말 정말 예상이 안 가거든.
한국에 있을지, 영국에 있을지 감조차도 오지 않잖아. 내 생각엔 한국에 있을 것 같아. 아직까지의 생각이야. 9월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가겠지. 적어도 당분간은.
나는 지금 여기 와서 살 쫙쫙 빠지더니 이제 좀 괜찮고. 안정적이야.
월화수목 중국 식당에서 점심 먹고. 저녁은 가끔 코코로에서 포장하고. 기억나니? 코코로에서 닭강정, 치킨 가스, 새우튀김 카레 중에 골라서 테이크 아웃하던 날들.
나는 말야. 사실 지금 1년 뒤를 생각하면 뭔가 진짜 심장 이상해지고 베베 꼬이는 느낌 들어.
여기 생활이 끝나고, 석사가 끝나고, 와.. 사실 사람 때문이지. 사람 때문에. 지금 딱 떠오르는 한국인 셋 때문이지.
모르겠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그냥 뭔가 여기 생활 다 끝나고 졸업해서 한국 돌아갔을 때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괜히, 괜히 심장 이상해. 이 생각을 하면 심장이 이상해서 자주 생각하면 안 되겠다 싶다가도, 그만큼 여기 생활을 감사하게 되거든 이러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이 새삼 좋고 이게 영원한 게 아니란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줘.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얼마나 많아. 마음 먹으면 언제든 런던이고 바스고 이쁜 도시에 갈 수 있어. 얼마든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친구랑 술 마실 수 있어. 하다못해 연습실도 공짜야. 한국 돌아가는 순간, 일주일에 한두 번 술 마시려면 연애를 하지 않는 이상 친구가 없고, 연습실도 당연히 돈 내야 하고 지금처럼 연습 안 할 걸 너무 알지.
진짜 너무 내가 그리던 생활이야. 그래 물론 지금도 옆방 음악 소리 시끄러워서 좀 짜증 내며 유튜브로 음악 틀었고 현재 짝사랑이 마무리가 될 듯하면서도 마무리가 안 되고 괴롭히고. 당연히 완벽하지는 않지.
그런데 어제도 글로벌 인재 장학생 파티 다녀왔거든. 요즘에 정말 브런치글 15일 동안 12개 썼거든.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고 행복해했다는 거니. 유튜브 쇼츠도 엄청 올리고. 정말 가슴이 채워지는 삶을 살고 있어.
그래 당연히 엄마, 할머니, 아빠, 동생도 보고 싶고. 한국 음식도 먹고 싶고. 비데 있는 화장실도 원하고.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환경이야.
그런데 나 여기 생활 좋아 이제. 온 지 두 달쯤 되니까 안정이 됐어. 행복해.
2023년 11월 17일, 나에게
2018년부터 미래로 편지 보내는 일을 종종 하는데, 그동안 보냈던 수십 통의 편지 중에 이 편지가 가장 가슴이 아팠어. 특히 마지막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타지에 적응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두 달쯤 되니까 안정이 됐다고 하는 말이 너무 슬퍼. 그 행복, 한 달 안에 깨지거든. 완전히.
1년 뒤 한국 돌아갔을 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베베 꼬인 기분이 든다고 했는데, 나 그 느낌 뭔지 기억하거든. 어쩌면 내가 직감이 발달해서, 이 행복이 빨리 끝날 거란 걸 미리 알았나.
그래 난 한국에 있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영국 정착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었어. 결국 다 접고 급히 돌아왔지만. 6월에 돌아올 거란 예상도 전혀 못하겠네. 난 9월 중순까지 있었어야 했으니까. 학생 비자도 끊어버리고 그렇게 중도 일찍 돌아올 거라곤... 결국 영국에서 지낸 날이 겨우 7.5개월이란 사실도 다시 한번 날 아프게 하네.
그래 넌 영국 도착해서 대체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제대로 못 먹어서 도착해서 3주 안에 3킬로 빠졌었지. 근데 슬슬 맛있는 거 찾아먹고 몸무게가 유지됐었지. 지금 난 한국 돌아와서 확 쪘다가 본가 돌아와서 빠지고 있어.
어후 그나마 중국 식당 밥하고 코코로는, 너무 물려서 안 먹고 싶다. 그거 하나 안 부럽다.
1년 뒤가 아니라, 일주일 뒤, 한 달 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할 너를 마주하니 참 심장이 쓰리다. 일주일 뒤에 너는 김현우 아니고 신찬성인데. 그리고 한 달 뒤엔 그 신찬성 마저도 나한테 거리두기 시작하는데.
차마 김현우, 신찬성, 김연지 셋 다 멀리 하라는 조언은 못 하겠다. 너의 전부였는데.
차마 이쁜 도시 더 많이 가라는 조언은 못하겠다. 넌 이미 일주일에 한 번꼴로 다른 도시를 갈 정도로 그 누구보다 영국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노력했는데.
차마 연습 더 하라는 말도 못 하겠다. 신찬성 때문에 총 11곡을 쓰게 됐는데.
난 너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너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최고로 잘하고 있어서.
그 작년 두 달 반 남짓의 시절. 너의 유학은, 그게 전부였어. 그 뒤 1월엔 숨도 못 쉬었고, 2월엔 라디오하며 잠시 정신 차렸지만 한국 간다고 난리가 났고, 그 여파로 3-4월엔 한국에 있었고, 돌아와서 4월 말부터 6월 초에 잠깐 단비와 같은 행복을 맞보더니 6월 중순에 영국 생활을 급 종료했거든. 그러더니 신찬성을 마주칠 수 있다는 희망도 없이는 못 살겠다며 8월에는 전재산을 다 털어서 영국에 2주 가기도 했었어.
그래 돈 때문에 한 마디 해야겠다. 오지 마!!! 6월에 한국 오지 마. 너 8월에 또 와. 걔 하나 때문에 전재산 다 쓴다. 오지 마!!!!
아니다. 8월에 영국 잠깐 갔을 때 느꼈던 행복이 있지. 내가 이런 미친 짓을 했다는 생각에 도파민 뿜뿜 하고. 너 마음대로 해라.
저 때 니가 행복한 줄 알아줘서 고맙다. 행복을 느끼고 즐겨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