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쓴다.
요즘 둘째를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다. 지금의 내 삶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는 둘째. 만 1세~만 2세가 가지고 있는 귀여움이 있다. 내 말을 다 알아듣지만,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대답을(귀여운 목소리에 엉성한 발음을) 허세 가득한 몸짓으로 할 때 귀엽다. 손가락 끝이 제법 야무져졌다고 해도 여전히 부들부들 몰랑몰랑 올록볼록 아기태를 벗지 못한 팔다리까지 온몸이 귀엽다. 서투른 것이 주는 귀여움이 있다. 미숙함이 주는 완벽한 이로움이 있다면 그것은 귀여움일 것이다. 아기들이 갖고 있는 귀여움이 바로 그런 것이다.
첫째 키울 때는 몰랐다. 이 귀여움의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미숙한 아이를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챙겨줘야 하는 이 시기가 영원할 것만 같아서 버겁기까지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시기가 생각보다 짧고, 금방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어르신들이 날더러 ‘좋을 때’라고 하면 ‘모르는 소리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물론 여전히 첫째도 귀엽다. 어쩔 땐 다 큰 것 같은데 가끔 엉뚱한 말들을 한다. “엄마, 서울에 소가 제일 많은 것 같아!” 잉? “ 아침 먹다 말고 갑자기 왠 ‘소’?? 깜빡이도 없이 들어온 대화에, 지금 서울에 사는 소가 있을까 싶지만 일단 되묻는다. ”왜?“ 그런데 아이의 대답에 빵 터졌다. “’서울우유‘가 제일 많은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 생각지도 못한 논리구만!ㅋ 서울우유는 서울에 사는 소에게서 난 우유라고 생각하는 네가 귀엽다.
하지만 첫째의 귀여움과 둘째의 귀여움은 종류가 다르다. 뭐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우선 첫째는 이제 너무 커버렸다. 내 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내 뱃속에 있었던 존재라고 이제는 좀처럼 상상을 하기가 어려울 만큼 훌쩍 커버렸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다르다. 가을이(첫째)의 말은 여름이(둘째)의 말에 비하면, 문장도 발음도 훨씬 완성되어 있다. 이제는 제법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나의 가벼운 거짓말 정도는 눈치껏 알아챈다. 내가 도와줄 일이 확연히 줄었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다.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완전한 ‘아기‘는 아니지만, 아직 아기태를 벗지 못한 시기가 만 1세~만 2세 인 것 같다. 그때 만의 귀여움이 있다. 나는 이제 그 시기가 지나는 것을 아쉬워할 줄 아는 경력직 엄마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여름이는 생일이 지나 만 3세가 되었다. 이제는 여름이가 점점 그 아이태를 벗어가고 있는 게 보인다. 이전보다 더 명확한 발음으로 말을 하고, 키도 어느새 제법 컸다. 그래서 그 귀여움이 사라져 가는 것이 더 아깝고 아쉽다. 너의 귀여움을 붙잡아 두고 싶다. 너와의 지금 이 시간들을 붙잡아 두고 싶다.
너의 머리카락을 하트모양을 묶어줄 때, 귀여운 핀을 달아줄 때 가만히 있는 네가
망태할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네가
목욕 중 비누칠하다 턱에 비누거품이 묻으면 산타할아버지 수염이 생겼다며 웃는 네가
내가 화장할 때 따라 들어와 립글로스를 발라달라고 하는 네가
그리고 그 입술로 ‘음파음파‘하는 네가
쪼끄만 상처에도 밴드를 붙여달라고 하는 네가
스크류바를 좋아하는 네가 (스크류바 이름 몰라서 딸기아이스크림이라고 하는 네가)
네발자전거를 타며 “엄마! 나 엄청 빠르지?”하는 네가
비 오는 날 물웅덩이만 찾아 걷는 네가
내가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릴 때, 다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네가
그러고는 갈린 커피를 향을 맡아보라고 내미는 네가
고양이 인형, 토끼 인형을 좋아하는 네가
로봇청소기를 무서워하는 네가
똥을 눌 때 꼭 날더러 발을 잡고 있어 달라고 하는 네가
그러고 똥을 다 누면 달력에 똥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는 네가
기찻길 만드는 걸 좋아하는 네가
드러누워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네가
그러면서 뭐라 뭐라 말을 하며 상황극을 하는 네가
“나 아기 때 엄마 쭈쭈 먹었지?” 하더니 “아팠어?“하고 묻는 네가
미니카 하나면 만사 오케이인 네가
내가 박수를 탁 치면, (초파리)”잡았어?“하고 묻는 네가
차들을 구경하느라 건널목을 늦게 건너는 네가
누나는 막 밀고 때리면서,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은 지켜준다고 안아주는 네가
“엄마차 멋지다~” (운전하는)”엄마 대단해~“하는 네가
차만 타면 도착할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네가
김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하는 네가
수박이랑 복숭아를 좋아하는 네가
귀가 커서 팔랑팔랑하는 네가
내 다친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주고는 “아 다행이다”라고 하는 네가
그런 네가 어디로 가버리는 것도 아닌데
이제 ‘그런’ 네가 없어질 거란 생각에
바보 같은 나는 이 밤에 주책맞게 훌쩍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