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톨레의 ‘고요함의 지혜’를
때로는 그런 때가 있다. 어떤 책이, 내가 딱 필요했던 순간에 나에게로 와서 나에게 딱 필요했던 말들을 건넬 때가 있다. 8월에 있을 독서모임 지정도서라서 읽게 된 ‘고요함의 지혜’라는 책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고요함.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좀 먼 사람이다. 나는 대단히 감정적인 사람인데, 그 감정들에 대단히 영향을 받으면서도 순간순간 몰려오는 감정들을 미처 다 소화도 시키지 못할 때도 많다.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 때문인데, 내가 그냥 삼켜버렸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어 제대로 소화시키는 과정이 나에게는 ‘일기 쓰기’인 것이다. 감정의 되새김질 같은 것이랄까. 그런 나에게 조금 버거운 달이 있다면 그것은 8월이다. 시어머니의 생신이 있는 8월. 어머니가 나에게 꼭 바라시는 게 있다면 그것은 매해 생신날 우리 집에서(며느리집에서) 나에게(며느리에게) 생신상을 받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평소에 그냥 집에서 밥을 차려먹는 것도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다. 요리에는 영 취미가 없고, 요리까지 하지 않더라도 밥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하는 일 자체에도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제발 밥 좀 안 먹고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다. (많은 주부들이 그렇게 생각하려나?) 그런데 그냥 밥을 차리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생일상을 차려야 하는 일이라니…
난 우리 엄마 생신상도 차려본 적이 없는데… (자랑은 아니지만;;;) 딸로서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난 그 집 딸도 아닌데 하려니 영 내키지가 않는다. 게다가 날 딸처럼 대해주셨으면 모르겠는데, (내 기준에서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딸처럼 대우받고 싶은게 아니다. 남의 딸로 대우받고 싶다.) 가뜩이나 싫어하는 일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하려니 불만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신혼 초 때는 그 일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사실 싸웠다기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화를 낸 것이기는 하지만ㅋ) 결혼생활 7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내가 이 상황을 제법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지금도 나는 이즈음 남편에게 퍽 심통을 부린다.
그러다 어머니 생신즈음하여 이 책을 읽게 된 것이었다. 이 책은 내 안의 고요함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감정이나 생각이 내가 되지 않도록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무르라고, 내게 주어진 상황과 사람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랬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다 도움이 되었지만, 굳이 한 부분을 꼽으라면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불만이 진정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나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쇠창살 대신 생각의 창살로 지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나를 보라. 나의 마음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 그동안 당하기만 하고 살았다며 늘어놓는 이야기에 내가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 그 이야기를 자꾸만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 없는 나를 보라. 마음에 일어나는 강박충동을 목격자가 되어 지켜보라. 다른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맑은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순간 감옥문을 열고 나와 자유인이 될 수 있다. “ (p.41)
나는 그 말이 참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해보았다. (100% 되지는 않았지만서도) 나는 뭐가 그토록 속상했을까. 왜 화가 났을까 생각해 보았다. (시어머니께) 사랑받고 싶었는데, 인정받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이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 상황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신상을 차려야 하고, 집을 깨끗하게 단장해야 한다는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에게 여전히 불만이 있지만, 그 불만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감옥에 갇히는 것도 그래서 힘들어지는 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인 것이기에 내가 나를 감옥에 가두지는 말자 싶었다. 그래서 기왕 하는 거 기꺼운 마음으로 하자고 다짐해 보았다. 되게 기껍지는 않아도 그래도 그렇게 하자고 마음먹는 것이 꾀나 기꺼워지는 것에 가까워지게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어머니 생일상에 무얼 어떻게 차릴지 계획도 세워보게 되고, 장 볼 것도 적어보는 열의를 보이게 되었다. (나는 무계획이 계획인 사람이라, 여행을 갈 때도 계획이란 걸 세우지 않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 기왕 하는 거 잘하고 싶어 지기도, 맛난 것을 차려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동안 생신상을 차렸던 날 들 중에 가장 마음이 평온했던 것 같다. (물론 100% 평온하진 않았다. 스트레스도 좀 받았고 짜증도 좀 부렸다. 그래도 그 정도가 퍽 낮아졌다.) 그리고 어머니도 좋아하셨던 것 같다. 맛있게 식사하셨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를 때 웃으셨고, 내가 선물드린 꽃다발을 안고 독사진을 찍어달라 하셨다. (나는 사진을 열심히 찍고 뽀샵까지 해서 보내드렸다.) 그리고 어머니는 집에 돌아가셔서 이런 카톡을 남기셨다. “맛있게 먹고 좋은 시간 보내고 왔구나~^^” 원래 그런 표현을 잘 안 하시는 분인데, 그 메시지 하나에 나 자신을 기특해하기로 했다. 그럼 됐다! 잘했다!
한 달 전쯤, 나는 이제 막 결혼을 한 아는 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동생의 여러 가지 고민들 중에 시댁고민도 있었고, 2세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 동생이 나에게 조언 같은 것을 구하는 듯해서, (내가 뭐라고 조언을 하겠냐만은) 내 이야기를 좀 해주었다. 시댁에 대한 것은 나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로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그들을 바꿀 수 없으니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을 좀 바꿔먹기로 했다고 말이다. (물론 나도 여전히 시댁이 편안하지는 않은 데다, 이만큼 되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그리고 2세에 대해서는 (아이를 낳기 전에 무얼 알면, 무얼 공부하면 좋겠냐길래) 육아에 대해서는 1도 몰라도 되니, 너 자신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힘들어하는지. 스스로에 대해서 알면, 그것이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순간들이 올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 나름대로의 고난을 겪으면서) 내가 어렴풋이 깨달은 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것들을 더 명확한 언어로 정리를 해 준 것 같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안의 깊은 곳에 이미 가지고 있던 지혜를 다시금 나에게 일깨워 준 것이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p.13)고 했다. “고통을 끝내고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무엇이든 마치 내 스스로 그것을 온전히 선택한 듯이 살아가라.”(p.121)고 말했다. 나는 딱 나에게 필요했던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지혜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한다. 덕분에 나는 한 뼘 성장할 수 있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찾아온다.”(p.77) 책을 읽으면서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이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알듯 말 듯 오묘했던 말이, 어머님 생신파티가 끝나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 그런 거구나…
나는 그동안 일기에 단 한 번도 시댁이야기를 쓴 적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그 세계(시월드)에 대한 나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소화가 되지 않아) 그랬던 것 같다. 울퉁불퉁 얼룩덜룩 시끌시끌한 마음… 여전히 나는 나에게 찾아온 그 새로운 세계에 적응 중이고, (‘가족’이라는 이름은 평생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여전히 나는 그 앞에서 흔들리고 뒤틀리지만, 그래도 그런 나를 붙잡아주는 남편이 있고, 나의 원 가족이 있고, 내 가족이 있고, 또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책이 있으니. 그 세계 속으로 나는 또 한 발자국씩 걸어 들어가 보련다.
아… 아버님 생신에는 또 뭘 차리지… 고민이네 고민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