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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20. 2024

몇 살부터 ‘형아’고, 몇 살까지가 ‘아가‘일까?

형아인 듯 형아 아닌 형아 같은, 아가인 듯 아가 아닌 아가 같은 너.

둘째는 만 3살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최고참이지만, 집에서는 막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형아’와 ‘아가’ 사이를 오가느라 바쁘다.


아직은 어려서 탄산음료는 안된다고 하면, 자기는 형아라서 먹을 수 있다는 그는, 형아라서 자전거를 엄청 빨리 달리고, 형아라서 영어로 숫자도 셀 줄 알고, 형아라서 엄마가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게 놔둘 수가 없다. (커피를 가는 것부터 내리고 컵에 따르는 것까지 모두 자기가 직접 거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삶의 온갖 것이 궁금하고, 삶의 온갖 것을 다 직접 해보고 싶은 아이는 그럴 때마다 ‘형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온다. 자기는 이제 형아라서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대체 ‘형‘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형아라면 응당 못할 것이 없다는 듯이 아이는 자신감에 차오를 때면 자신을 형아라 지칭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한 번 형아가 영원한 형아는 아니라는데 있다. 자기가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혹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형아’ 자처하며 짐짓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짓던 그가 자기가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남이 도와줬으면 할 때에는 ‘아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온다. 그러한 태세전환은 매우 신속하고 감쪽같은 것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얼마 전 키즈카페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  기차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시간이 되자, 얼른 달려가 줄을 서서 기차에 탑승한 아이는 안전벨트를 매는 법을 몰랐다. 아이는 얼른 선생님을 부른다. (키즈카페 직원분을 말하는 것이다.) “선생님~! 저는 아가라서 안전벨트를 못해요~ 도와주세요~! “ 언제는 뭐 형아라서 못하는 게 없다더니, 금세 아가가 된 그는 부탁인 듯 말하고 있으나 ‘아가’라는 것을 방패 삼아 자신을 도와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당돌해서 우습던지. 그래놓고서는 기차를 타는 내내 ‘은하철도 999’ 주제곡을 열심히 부르는 네가 대체 몇 살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다 이번에는 집라인을 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르르 달려가 줄을 선 형 누나들 틈에 둘째도 나란히 섰다. 네가 탈 수 있겠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앞에 선 형 누나들이 씽씽 집라인을 타는 모습을 보면서도 포기를 않는 네 용기에 이제 제법 컸구나 싶어 기특해하려는 찰나, “나는 아가라서 천천히 해야 돼요! “라고 조건을 내거는 너. 이건 또 무슨 당당함인가 싶어 웃기다. ‘키 제한에나 걸리지 않아야 타든지 말든지 하지!’ 하는 마음으로 ”이따가 선생님께 그렇게 말씀드려~”했더니 진짜로 자기 차례가 되자, (일단 턱걸이로 제한 키는 넘어서 탈 수는 있게 되었다.) 선생님께 요구사항을 이야기하는 너. “선생님! 저는 아가라서 천천히 해야 돼요!” 선생님 눈에도 제한 키를 겨우 넘은 네가 아가로 보이긴 하셨는지, 천천히 설명해 주시며 자세를 바르게 잡을 수 있도록 기다리며 지도해 주셨다. 그리고 정말 다른 형 누나들보다 살살 밀어주셨는데… “꺄아!!!!!!!!!” 너에게 첫 집라인의 경험은 제법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출발과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 질겁한 너를 선생님은 얼른 뛰어가 잡아주셨고, 집라인에서 내려 아빠에게 안기고, 또 엄마에게 안겨서도 엉엉 울었던 너다. 그래, 아가 맞는구나 싶다.


그런데 내 눈에도 그렇다. 어떨 때는 네가 아가로 보이고, 어떨 때는 네가 형아로 보이고 그러는 거다. 그네는 잘 타면서 비슷한 집라인에는 엉엉 우는 네가 아가 같다가도, 처음 보는 선생님들께 자기 요구사항을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너는 제법 형아 같기도 하고 그렇다. 아까 기차를 타고나서도, 얼른 선생님께 다가가 이번에는 맨 앞자리 운전석에 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는 너. 그렇게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형아 같은 네가 안전벨트는 못하는 아가라는 게 나는 재밌다. 그게 지금 너를 키우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말도 다 통하는 데다 가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그리고 가끔 옳은 말도 해서 나를 놀라게 하는 너지만, 여전히 아가처럼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며 장난스럽게 눈웃음을 짓는 네가. 때로는 형아가 되고 때로는 아가가 되는 것이 만 3세의 매력이 아닐까. 그것이 만 3세를 키우는 것의 매력이 아닐까.


몇 살부터 ‘형아‘가 되고, 몇 살까지가 ’ 아가‘인 걸까? 그건 나도 모르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네가 사랑스럽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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