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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Oct 23. 2024

그대가 수박이라면…

초록바탕에 검은 줄무늰 줄 알았는데, 빨간 바탕에 검은 점이 박혔더라

얼마 전, 우리 집에 한 커플이 방문했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결혼예비학교‘ 과정을 하는 중에, 앞서 결혼한 부부의 집을 방문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조정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부부간의 의견 조정, 갈등 해결과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모임을 나누고 마무리를 짓는 가운데, 진행자분이 마지막으로 그 커플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냐고 하셔서 내가 그 순간 생각나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해서 같이 살게 되면, 내가 알지 못했던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치 이런 것처럼요. 상대방을 수박으로 친다면 결혼 전에는 초록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껍질이 벗겨지면서 빨간 바탕에 검은 점이 콕콕 박힌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 내가 이 사람을 제법 알고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인 거예요. 그럴 때가 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요. 그럴 때 그런 다른 모습의 상대방을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는 게 관계에 있어서 갈등을 줄여주는 길인 것 같아요.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가진 상대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그게 쉽지는 않지만 중요한 부분 아닌가 생각해요~. “


그날 이야기를 나누면서 혼자 든 생각이었고, 곧 나의 이야기였다. 나는 결혼 전에, 남편이 감정기복이 없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감정기복이 심한 나를 그가 중화시켜줄 수 있다고 여겼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또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을 (또 나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사실 과거의 상처도 많고, 그로 인해 여전히 마음속에서 치열한 전쟁을 겪을 때가 많았고, 나는 겉으로만 기복이 심했지 안으로는 의외로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중에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서로가 그런 사람이라는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도 그렇지만, 일상적인 습관과 같은 사소한 부분들에서도 내가 결혼 전에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될 때가 많았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상대를 깊이, 또는 사소하게 겪을 일이 잘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 초기에는 나도 그런 그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왠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계속 그러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은근히 그가 바뀌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몇 해가 흐르고 계속 그런 그를 겪다 보니 나도 그런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 그가 ’진짜‘ 그였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라고 여기고 나면, 나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사실 최근에도 나는 남편의 빨간 바탕에 검은 점이 불편할 때가 있었다. 그는 나와 갈등해결 방식? 대화 방식? 이 많이 다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상황을 (때로는 타인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날 것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다. 몇 년 간 나는 그런 그가 불편했다. 쿠션이 없이 다이렉트로 훅 들어오는 본론에 나도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고, 그런 그를 당황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때로는 “그냥 말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하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얼마 전 그 커플에게 해주었던 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런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그런 그의 모습을 존중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불편했던 그가 오히려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는 나와 방식은 다르지만 (그래서 나는 그게 불편하지만), 결국 그는 내가 못하는 것들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그에게 잔소리 대신 이렇게 말해주었다. “잘했어요~ 수고했어요~ 여보의 그런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새로이 부부가 될 커플에게 나름의 조언이랍시고 건네었던 말이, (내가 뭐라고 조언을 하겠냐만은) 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에 나에게 필요할 줄 알고, 과거의 내가 그런 말을 떠올려 꺼냈었나 보다. 초록바탕에 검은 줄무늬이건, 빨간 바탕에 검은 점이건 그대는 그대다. 겉도 속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기를 나는 오늘도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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