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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낳고 비로소 나를 마주하다.

ep.05 나를 치유하는 과정

by 그러닝


난 어떤 인간이었을까?



아이가 자라 내일이면 벌써 8개월이 된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그리고 육아를 하는 그 긴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되었다. 되돌아 보면 기억이 나는 것이 별로 없다. 문득 힘들었던 막달의 고통과 모유수유, 그리고 아직도 통잠을 자지 못하는 내 아이의 곁에서 수시로 수발을 드는 지금의 내 망가진 모습만이 떠오른다. 먼저 아이를 낳고 키워낸 부모님들은 분명 이 시기가 지나고 보니 너무나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그러니 마음껏 즐기라는 덕담을 해주실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미성숙한 나라는 인간이란 잔인하게도 지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 순간의 행복이 행복임을 알 수가 없단 걸 말이다.


지금까지의 육아가 마냥 즐거웠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말했듯이 우리 아이는 통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라서 나 또한 지난 몇 달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좀비로 살아가고 있다. 바쁜 일은 아이가 저녁 잠에 들고 난 후에야 시작을 해 밤 열 두 시를 넘겨 잠이 드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거기에 믿었던 남편마저, 시댁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시댁과 연락을 하며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나는 신체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지탱을 받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아니 그 누구도 나에게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힘들게 하려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일과 병행하며 부딪힌 육아는 결코 쉽지 않았고,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는 나의 체력은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점점 옹알이를 하고, 뒤집기 지옥에 빠지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자꾸만 보이는 내 아이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것이 훨 컸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힘들다는 불행 또한 크게 느껴졌다. 남편과 바통터치를 하며 육아를 했으나, 아이에게 전적으로 필요한 것은 엄마였고 아이를 키우며 엄마의 손이 더 많이 갈 수 밖에 없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또한 시원스레 육아를 해내지 못하는 남편의 의도치 못한 육아를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보다는 원망의 마음이 조금씩 커져갔다.


결국 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데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고 우리 부부는 나의 날선 말끝의 칼로 인해 몇 번을 서로 상처 받고 상처 입히기를 반복해야 했다. 가족 일로 마음이 힘들었을 남편은 육아에 지쳐가며 자신을 향한 미소를 잃어가고 있는 나의 마음까지 챙겨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나의 체력으로 인해 스스로도 지쳐가는 듯 했다.


이건 정말 폭풍전야와도 같았다. 너무 작고 소중한 이 아이를 보며 함께 웃고 떠들다가도, 남편의 작은 실수가 내 화를 돋구고 기분을 상하게 하고, 결국 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다음 날 사과를 하고 속죄를 한다. 거울을 보다가 '아 내가 정말 왜 그랬을까.. 나 진짜 엉망진창인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이내 창피한 내 얼굴과 더이상 마주보기를 거부한다.


그러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인내심이 부족하고 성격이 급한 지에 대해 새삼 알았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 걸어도 빠르게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걸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하루 정도 미뤄도 되는 설거지가 눈에 보이지 않도록 밤 열 두 시가 되어서도 씻겠다고 부엌에 서있어야 하는 성질 급한 사람이라는 것도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소리를 꽤 잘 지르고, 언성을 자주 높일 줄 아는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것도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나라는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나이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이런 내가 부끄러운데, 달라질 수 있을까?


나이스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타인에 의해 성공의 잣대가 결정지어 지는 건 원치 않았고, 내가 봤을 때 참 멋지다! 싶은 어른으로 남고 싶단 욕심이 있었다. 끊임없이 배우며 살려고 했고, 마음 착하게 살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 사업도 잘 하고 있고, 내 목소리를 내며 성공한 사람들과 자주 마주하는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 낸 내 삶에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다. 아이를 낳으면 이런 나의 삶이 그대로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고, 그 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워내는 데에 자신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아이를 낳고 키워낸 지난 8개월의 시간을 되돌아 봤을 때, 후회로만 가득 차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꾸만 내 가족들에게 민감하게 구는 이 구차한 스스로를 마주하고 나서야, 모든 시간이 후회였음을 자책한다.


이제 곧 엄마라고 부를 아이의 미소를 보면, 내 마음 속에선 더 잘해주지 못하고 더 놀아주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후회로 인해 눈물이 흐른다. 밝고 자신감이 넘쳤던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이리도 녹초가 되어 버린걸까. 난 이런 내가 부끄러운데, 이제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아이의 미소를 보며, 그리고 내 눈치를 보는 남편의 우울한 눈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기 시작한다. 몰랐던 나의 모습을 마주했었기에, 그 모습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내 자식이 주는 사랑. 내가 어딜 가든 나를 향해서만 따라오는 아이의 시선. 나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있는 내 아이를 향한 사랑. 아이를 위해, 그리고 아이로 인해서 나는 나를 배워가고 치유해간다.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까봐 하루라도 빨리 나의 싫은 모습들을 고쳐나가보려 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되는 내 태도에 대한 후회 속에서, 오로지 아이를 더 사랑해주자는 마음만큼은 커져간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아이한테만큼은 사랑만 더 많이 주자고 말이다. 나를 배려해주는 남편에게도 더 따뜻하게 말을 건네자고 말이다.


아마도 이 시기가 먼 훗날 너무나 그립고 보고싶은 때가 되겠지. 가장 예쁜 아이와 젊은 날의 남편을 만날 수 있는 시기니까 말이다. 먼 훗날 후회를 덜 하려면, 오늘을 더 열심히 뜻하는 대로 살아야 겠지? 그럼 아이와 남편에게 더 많이 사랑을 나눠져야 겠다. 후회하지 않게, 그리고 날 이대로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더 나은 어른이 되기를 늘 바랬던 나 자신을 위해, 나의 못난 모습들을 마주하고 반성하고 고쳐 나간다. 더 창피해져 갈 수록, 나는 잘 변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엄마로서 나도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보려고 한다.


오늘도 졸립다고 아가 널 덜 안아 준 것에 대해 후회하고 미안해. 남편, 밥을 빨리 안먹는다고 화낸 것에 창피하고 속상해. 꼭 반성하고, 내일은 좀 더 나은 엄마 그리고 아내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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