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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있는 고야 (6)

꼭 나니까 이룰 수 있다는 자만감(내가 싼 똥)

by 최병석

나밖에 할 수 없는 버림이 꼭 있었다. 별거 아닌 나의 흔적을

예순이 넘는 나이로 켜켜이 쟁여 놓았던 자만감들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버리고 싶은데 없애도 되는 거였는데 내 눈치를 보며 혹시라도 내 자만감에 스크레치라도 그을까 봐 염려하였다.


따지고 보면 그럴만한 것도 아니었다. 나 몰래 슬그머니 치워버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도 한 해도 아니고 무려 예순이 넘는 해를 살아낸 관록(?)의 무게가 무겁긴 한 가 보다.


딴은 이랬다. 좋아하셨던 건데, 아끼시던 건데,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건데, 평소 자랑이셨던 건데...


결국 나 때문에 불필요했던 것들이 쌓여 있었으니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차피 나의 존재가 사그라들면 기억 이외에 다시 생각하는 횟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재작년 어무이와 천국행 열차를 환송하며 <먼저 가 기다리시라> 귀엣말을

드리고 난 후 흔적 지우기에 바빴다. 가지고 계셨던 옷가지며

사진들 그리고 서류상 남아있던 살아있음의 증거들을 깡그리 지우려 애를 쓰다가 문득 가늘게 남아있는 어무이의

다정한 미소를 깨닫는다. 그리고는 이 기억은 그야말로 내 살아있음과 동행하며 맥을 잇다 가는 사라져 없어지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에서 손주까지 이어지는 기억은 그리 오래지 않을 것인즉.


오늘은 이것저것 벌여놓은 <디지털흔적>들을 정리해 보자!

그야말로 나이 외에 알 수 없는 흔적들이 도처에 깔려있는데

내가 당장이라도 사라지면 그저 남아서 보이지 않는, 온라인의 좁지만 넓은 공간 속에서 촌스럽게, 자만감이 흘려대는 땀을 뻘뻘거리며 닦아 대며 힘들어할 것이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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