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빚을 안고 산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일까? 최근에 모프로그램에 의하면 큰돈도 아니고 소액의 돈을
악덕 사채업자에게 빌렸다가 고율의 금리에 각종 SNS에 <돈을 꼭 갚겠으며 혹시라도 갚지 못하게 되면 자신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 꼭 대신 갚아주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담은 동영상을 올리게 해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사례들을 본 적이 있다. 사회적인 약자들을 괴롭히는 있는 자들의 횡포다. 단 몇십만 원을 빌릴 데가 없어서 사채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니...
무서운 빚이야기! 살아가며 빚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런 날이 있기나 한 걸까? 최근의 통계를 보면 70대의 대출액이 20대의 대출규모보다 많다고 한다. 결국 나이 들어 노년으로 향하는 길목에도 여전한 빚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얘기인데... 씁쓸하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에 다이아몬드 수저를 들 수밖에 없었던 부유층들이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흙으로 만든 수저조차 없어서 싸리빗자루를 꺾어서 만든 젓가락을 감지덕지로 들어야만 하는 어려운 사람들은 살기 위해 <빚>을 져야 한다. 그 빚으로 삶을 연명하는데 <일수>도 찍고
<달수>도 찍으며 온갖 수모와 욕설을 들어가며 <빚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만 한다.
재정이 부족하니 돈이 쌓여있는 은행으로 달려가서 내 부족한 재정에 도움을 주면 <반드시 갚고> 그 고마움으로 다른 은행이 아닌 <이곳, 이 은행>을 주거래 은행 삼아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가겠노라 다짐도 필요 없다. 그런 다짐은 개한테 줘버려도 쓸모가 없다. 무언가 확실한 돈이 될만한 <담보>가 없으면 찬밥이다. 은행문을 나와야 한다. 그러니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되어서 그 비싸고 더러운 수모를 당해가며 사채꾼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녕 이 <아무것도아닌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도둑질보다 사채를 빌려서라도 떳떳한 지출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주어진 권력을 휘둘러 몇 천만 원, 몇 억을 호가하는 물건들을 눈도 꿈뻑안하고 한 입으로 꿀꺽 삼키는 짓거리는 애시당초 거리가 먼 남의 이야기라는 얘기다.
그러니 그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자리를 함부로 되뇌며
욕보이지 말아 달라, 가뜩이나 힘이 드는데 소위 말해서 잘 나간다는 양반들이 왜들 그러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