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채집
요즘 매미들은 극악무도하다. 날려대는 울음소리는 울음을 넘어서 거의 생 떼에 가깝다. 내 울음소리에 꼭, 반드시 반응을 하라는 억지강요다. 그러나 이제 그 울음소리도 막바지에 와있다. 귓전을 기어코 찢어지게 만들어야 되겠다는 그 고집(?)은 힘을 다 했다는 보고서를 결재판에 끼워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꽤씸한 매미를 떠 올리다 보니
맨손, 맨몸으로 곤충들을 향하던 어릴 때가 떠 오른다.
국민학교 시절 요맘 때면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못다 한 숙제를 위해 한강너머 영동대교를 건너 온통 밭으로
둘러싸인 강남으로 향하곤 했었다. 물론 그 흔한 잠자리채나
수집통도 없이 맨손과 비닐봉다리만 챙긴 채로. 그 어릴 때
혜안이 있었더라면 무조건 발에 밟히는 땅을 빚을 내더라도 사놓고 볼 일이었을 테지만 그런 눈은 가지고 있질 않았었고.
비닐 봉다리에 갇힌 채 숨을 헐떡거리는 곤충들을 다듬어야 할 시간이 왔다. 준비물을 살펴보자. 와이셔츠를 담았던 박스 1종, 셀로판지 1종, 알코올, 주사기, 하루핀 1통, 볼펜, 풀 등등이다.
아직 팔딱이는 매미의 몸통에, 메뚜기의 몸통에 휘발성 알코올을 주사기로 주입하면 꼿꼿하게 굳어버린 형체를 근사한 폼으로 자세를 교정하고 와이셔츠박스의 밑바닥에
하루핀으로 눌러 고정한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만들어 놓은
이름표의 빈칸에 <방아깨비> <채집일> <채집장소>를 기록한다. 맨 위칸부터 핀으로 고정해 놓은 <죽은 곤충들>의
사체가 알코올냄새에 휩싸인 채 숙제 검사를 위한 대기표를 받아 들었다. 물론 이것들은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내기 위해
그냥 투명한 비닐 보다 초록색 셀로판지를 덧씌우는 게 낫다.
이런 수고로움은 여름방학의 대미를 장식하는 과제물 전시회의 최상단에 걸터앉아 <최우수상>을 끌어안았었다.
지금은 이런 숙제가 있을 리 없다. 있을 수도 없겠고... 논란도 따를 일이다. 생명경시니 잔인한 짓거리며 또 이런 걸 자랑스럽게 상을 줘서 칭찬할 일인 것인가? 생각도 따른다.
사실 저런 숙제를 그 어린 내가 누구한테 배워서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동네 형들이 제출했던 과제물을 보고 흉내를 내서 따라 했던 것인데 지금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
악다구니로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있는 매미를 보다가 <너 예전 같으면 없다 없어> 남발하며 분풀이로 옛날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아직 매미가 저리도 울어대는 걸 보니 지금은 여름이 맞는가 보다.
<매미소리가 들리면 비가 그친 거고, 매미소리가 그치면 여름도 그친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