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혼자 있다는 느낌에 빠지지 않으려고 꽁지머리는 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암막 커튼 사이를 빠져나와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햇볕의 발걸음. 꽁지머리는 그렇게 아침을 맞는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가글부터 한다. 오물오물 밤 동안 입안에 고인 무거운 시간을 씻어낸다. 언제나처럼 커피잔을 들고 상당히 익어버린 아침을 느낀다. 아내와 해바라기를 하며 마시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내가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던 커피 향을 불러내려 하지만 마시는 것은 늘 공허한 마음뿐이다. 아침마다 꽁지머리는 혼자이다.
꽁지머리는 늘 큐브에 갇혀 있다. 17층 아파트. 문은 늘 닫혀 있다. 휘휘하기까지 한 적막과 마주 서서 꽁지머리는 세상을 바라본다. 아내가 떠난 후 그의 세상은 늘 잿빛이다. 노트북은 닫혀 있었고, 잿빛 세상에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참자’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들. 혼자 사는 재미에 빠져 있는 마흔이 넘은 아들은 갑충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아들이 무심하게 던져주는 ‘사과’를 거부하고 어느 구석에서 눈을 감지 않을까. 날벼락이라도 쳐야 하지 않을까. 우울증의 포충망에서 그는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인가 판을 흔들어 주었으면, 차라리 폭설이 내려 굵은 나무의 허리를 뚝뚝 부러뜨렸으면. 무너져가는 마음을 거칠게 휘둘러주었으면, 잊고 싶지는 않지만,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 것들. 그것들의 무게는 꽁지머리가 혼자서 짊어지기에는 무거웠다.
어스름이 세상을 덮어 올 때, 꽁지머리는 밖으로 나갔다. 꽁지머리가 낮 동안을 혼자서 버텨낸 건 모두 아내의 도움이다. 커피를 몇 잔이나 내려 마시며 꽁지머리는 늘 곁에 붙어 있는 아내에게 투정을 부렸다.
‘여보, 나는 참 무서워. 그리고 힘이 없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주는 공포감. 견딜 수 없어. 이건 우울증일까.’
아내가 떠나고 난 후, 꽁지머리는 힘을 잃었다. 자기가 소설가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서하는 시간마저 다 잃어버리고 있다. 해가 뜨면 일어났고, 아내의 체취가 남아 있는 소파에서 뒹굴다가 아무렇게나 잤다. 그렇다고 페인까지 가버린 것은 아니다. 외롭다는 느낌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꽁지머리는 오래 살아서 세월에 짓눌리고 싶지는 않았다. 걸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언제든지 그가 쥐고 있는 한 가지.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룰루랄라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편안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아내와 자식들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들었으면. 그리고 아내 옆으로 갔으면. 그전에 홀로 살고 있는 아들 곁에 어떤 여성이 다가와 살갑게 살았으면.
ㅡ꽁지머리야, 우리가 살아온 삶이 언제는 마음에 들었더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지.
흰머리가 술잔을 건네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쏟아낸다.
ㅡ웃기는 놈. 네가 뭘 안다고 늘어놓는 거냐고. 늘어놓기를
꽁지머리는 자신을 흔들고 있는 술잔이 마주 앉은 흰머리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ㅡ야, 인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말 알지? 푸쉬킨 말이야.
찰랑머리가 안경 너머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저 세상에서 잠든 푸쉬킨을 부른다.
ㅡ푸쉬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ㅡ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흰머리도 덩달아 히죽거린다.
ㅡ흰머리야, 너는 다 나쁜데 이럴 때가 더 나빠. 인마. 우울한 날들을 견디고 믿으라고. 나쁜 놈.
ㅡ오늘따라 이 친구가 왜 이러실까?
찰랑머리가 술잔을 내밀며 궁금해 죽겠단다.
꽁지머리는 며칠 전부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아들 녀석을 불러 기어이 일을 벌이겠다고. 일단 밥을 먹이고 술잔을 나누면서 달래 봐야지. 요즘 내가 공을 많이 들여서 조금 고분고분해졌으니까 잘 되겠지.
ㅡ아들 출장은 잘 다녀왔냐?
ㅡ네,
오늘도 이 녀석 말이 짧다.
ㅡ요새 회사 일이 바쁘냐?
ㅡ네.
ㅡ그래도 언제 시간 내서 밥이나 한번 먹자. 아버지랑.
ㅡ시간 나면 연락드릴게요.
그래도 아버지 건강은 어떠냐고, 식사는 잘하느냐고, 사람들과는 잘 만나고, 글을 좀 쓰고 있냐고. 지나가는 말로라도 이런 거 좀 물어보면 좀 좋아. 야속한 자식. 꽁지머리는 어수선한 마음이 쨍하고 금이 가는 것을 보았다. 우울했다. 불 꺼진 그녀의 창에 희미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비치는 것을 본 것처럼. 꽁지머리는 조영남이 불렀던 노래를 불렀다. 정확하게 말하면 노랫말을 소태를 씹은 기분으로 내뱉었다.
ㅡ그래서 아들과 밥을 먹었어?
ㅡ먹긴 먹었는데…….
ㅡ그래, 먹었는데.
찰랑머리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ㅡ아우야, 술이나 한잔 따라 봐라.
흰머리는 잔이 넘치게 소주를 부었다. 안다. 흰머리 이 녀석의 속이 지금 어떤 모양인지.
식사를 마칠 즈음에 꽁지머리는 슬그머니 물었다.
ㅡ아들, 요즘 만나는 사람 있냐?
ㅡ없어요.
ㅡ그럼 어떡할 거야?
ㅡ어떻게 되겠죠.
ㅡ그런 말이 어디 있어? 뭔가 노력을 해야지. 그러지 말고 결혼정보회사에 한 번 가보자. 거기는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을 만나는 거니까 입장이 다를 거고.
ㅡ싫어요.
꽁지머리는 단칼에 잘라내는 아들이 야속했다. 미웠다. 보기 싫었다. 아무리 그렇더라고 해도 좀 그렇게 쌀쌀맞게 말하는 건 뭐냐. 대화가 아닌가.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가 아니냔 말이다. 왜 싫은 건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말하고 싶지 않았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생각나며 분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먼저 가버린 아내도 그늘진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ㅡ흰머리야, 하늘이 노랗더라. 세상 참 무섭더라고.
꽁지머리는 술잔을 들어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목구멍을 넘어오는 술이 참 썼다. 글이 안 써지는 깊은 밤의 외로움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어느 여가수의 노래처럼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ㅡ흰머리야, 나는 뭐냐? 내가 자식을 둔 아비이기는 한 거냐?
ㅡ아우야, 우리가 어디 한두 번 겪은 일이냐? 아들놈이 돌 지날 무렵인가. 자고 있는 내 뺨을 때리면서 깨울 때부터 우리는 을 중에서도 슈퍼 을이 되었던 거야. 늙은이 인생 다 그런 거다.
찰랑머리가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ㅡ 무슨 말을 할까요 울고 싶은 이 마음 눈물을 글썽이며 허공만 바라보네
윤항기는 대단한 참 가수다. 어쩜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불렀을까. 찰랑머리가 시작한 노래를 한 소절씩 불렀다.
슬프게.
처량하게.
그리고 비참한 지경에 이른 마음으로.
ㅡ무슨 까닭인가요 말없이 떠난 사람 정말 좋아했는데 그토록 사랑했는데
ㅡ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ㅡ내가 미워졌나요 믿을 수가 없어요 믿을 수가 없어요 내 말 좀 들어 봐요
ㅡ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ㅡ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술판은 깊어가는 밤을 따라 익어가고 세 늙은이들의 마음은 숯처럼 새카맣게 타고 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항상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식 놈들과 함께. 그리고 우리들을 짓누르고 있는 우울감과 함께. 보이지 않는 울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