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는 구직중 13화>
요양원의 추석은 언제 시작될까?
바로 한 달 전 쯤 이다. 내가 다니는 요양원에는 이른바 희망 off 제도가 있다. 자신이 쉬고 싶은 날을 한 달 전 쯤에 미리 알리는 것이다. 10월이다 하면, 9월 중순까지 요양보호사들의 희망 off를 취합한다. 사상 유례 없이 연휴가 길었던 올 추석, 그만큼 연휴를 앞둔 요양보호사들의 속내들은 복잡했다.
▲ 추석 © 핀터레스트
예전에 시댁이 싫었던 요양보호사 어떤 분은 그래서 명절이면 일부러 일을 했다던데....... 하지만 대부분 '주부'임을 자청하는 요양보호사들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이른바 '눈치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일년 365 일 단 하루, 한 순간도 '쉼'이 없이 운행되어야 하는 요양원, 누구나 남들이 다 쉬는 추석 명절에 쉬고 싶지만, 요양보호사들에게는 가장 분주한 시간이다.
우리는 천재적인 혁신가 없이도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만 성실한 메인테이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전치형, <사람의 자리>
과학 기술 세계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선행 연구자들에 대한 경의의 의미로 등장한, 메이테이너란 용어지만, 명절 등 일상의 모든 순간을 지켜내는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데 손색이 없는 용어처럼 여겨진다. 아침 방송 라디오에서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뿌듯했지만, 메인테이너의 현실은 질박하다. 원하건 원치 않건 그래서 요양보호사들은 그 길고 긴 열흘의 연휴를 번갈아 가며 요양원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로 서로의 추석 명절을 품앗이 하기 위해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원을 지킨다.
명암이 분명하게 대비된다. 명절 답게 면회가 쏟아진다. 쏟아진다는 표현이 적합하리라. 추석에 성묘를 가듯이, 가족들은 추석을 기점으로 해서 앞 뒤로 며칠 간 어르신들을 찾아온다. 기력이 없으셔서 '베드'로 면회를 나가신 어르신, 그 분 주위를 온 가족이 에워싼다.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에, 심지어 강아지까지 총출동하기도 한다.
어르신들의 면회가 예정되어 있으면 요양보호사 들은 분주하다. 어제 목욕을 했더라도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밝게 보이실 수 있도록 가지고 있는 옷 중 그래도 화사한 옷으로 다시 갈아 입혀드린다. 늘 누워만 계셔서 눌린 머리를 빗기고, 아침에 세수를 했어도 그새 눈꼽이 끼지 않았나 확인도 하고, 혹시라도 소변 냄새라도 날까 향기로운 로션도 다시 발라드린다. 남자 어르신들께 빼놓을 수 없는 건 수염이다. 누워 계신다 해도 수염은 변함없이 하루, 이틀만 지나도 덥수룩해지니. 겉치레라 해도 할 수 없지만, 명절빔은 아니더라도 추레한 모습으로 가족들을 만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 또 다른 보호자(?)'의 심정인 것이다. 준비가 끝난 어르신들은 휠체어에 앉아서, 혹은 베드에 누워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를 하신다.
▲ 면회 © 전주 허그빌리지 요양원
가족들이 오셨다는 기별이 오면 부리나케 모시고 내려가 요즘 어르신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상태가 어떤지 등을 전해드린다. 평소에도 면회가 많은 날은 인원이 넉넉해도 힘든데, 적은 근무 인원에 면회가 쏟아지는 추석 연휴 기간은 그야말로 혼이 쏙 빠지도록 정신이 없다.
그런 가운데에도 눈에 밟히는 분들이 계신다. 나도 면회가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휠체어를 끌고 복도를 서성이는 분들........ 아침 댓바람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들락날락, 그러다 하루가 저물면, 일찌거니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쓰신다. 웅크러니 누워 계신 그 뒷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외로워 보이신다.
명절이라고 한 쪽에서는 면회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데, 같은 방을 쓰시는 다른 분들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묻어두었던 가족과의 적조함이 흙탕물처럼 솓구쳐 오르는 것이 명절인 것이다. 아니, 꼭 가족이라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요양보호사가 아니면 거의 tv만을 벗 삼아 지내는 요양원의 나날, 굳은 살처럼 무뎌졌다 여겼던 일상에서 그 누군가, 사람을 향한 애기 속살같은 그리움이 잠시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면회를 한 어르신들이 가져오신 전이라도 한 조각 슬며시 입에 넣어드려 본다. 엄밀하게 원칙에 위배된 행동이지만, 사람에 대한 그림움을 그 명절의 기름맛으로라도 달래보시라고 하는 부질없는 위로의 제스쳐인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면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나면 명절이 끝날까?
아니 휴유증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아이고,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내 배 좀 어떻게 해봐요.'
면회를 마치도 돌아온 날 저녁 어르신의 울먹이는 호소이다. 그래도 명절이니 가족들은 저마다 추석 음식들을 준비해 와서 어르신과 나누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요양원에서 나오는 건건하고 덜 기름진 음식을 드시다, 기름진 전에 잡채에, 떡 같은 것들을 드신 어르신들은 면회가 끝나고 나서 한 차례 복통과 설사 등 통과 의례를 거치시기도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애교 랄까. 때로는 온 가족이 총출동한 면회건만 어르신 목 축일 음료수 한 병 사오지도 않고, 외려 어르신이 들고 오신 통장이며 현금이 어딨냐며 반문하는 가족들도 있다. 어떤 어르신은 요양보호사들이 바래지도 않건만, 당신이 민망해 다음에는 박카스 한 박스라도 사오게 하겠다고 지레 앞서 가시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요양원에 와서 가장 흔해진 게 '박카스' 이긴 하다.
제일 심각한 후유증은 솟구쳐오르는 감정들이 아닐까. 면회를 오지 않으면 안 와서 외롭지만, 가족들과 떠들썩하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어르신들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때로는 '집에 가고 싶다'며 , '집에 보내달라'며 우시기도 하고, 평소보다 한결 우울해하시곤 한다. 그래서일까, 처음 요양원에 입소하시면 간호진은 너무 자주 면회를 오지 말라 외려 당부를 드리기도 한다. 가족들의 안쓰러운 마음이 역설적으로 어르신들의 적응을 방해하기도 한다나.
그렇게 전쟁처럼 요양원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요양보호사들은 마치 전투에서 전사하지 않은 전우를 독려하듯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 하루를 무사히 치뤄냈음을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