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쫓아내고 싶은 감정
오랜 더위가 물러가나 보다. 앞자리 3이 1로 변하며 갑자기 추위가 훅 느껴졌지만, 그마저도 오래 느낄 여유가 없는 월요일 아침. 먼저 내 출근 준비를 마친 다음 아이들의 방문을 열어본다. 시험공부를 하다 늦게 잠든 첫째는 일곱 시가 다 되었는데도 침대에 찰싹 붙어 곤한 모습이 안쓰럽다. 키가 쑥쑥 컸으면 하는 간절한 엄마의 마음을 담아 아로마 오일을 한 방울 손바닥에 톡 떨어뜨려 둘째의 무릎 뒤쪽부터 종아리를 마사지한다.
겨우 일어난 아이들을 화장실로 보내고, 온수와 냉수를 반반 담은 물컵과 사과를 준비한다. 꼭 아침을 먹는 아이들을 위해 어젯밤 미리 김치찌개를 끓여놓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7시 30분 출발. 이른 출근을 하며 아이들의 아침 식사까지 챙기는 것이 쉽지 않지만 엄마로서 꼭 챙겨주고 싶은 일이다. 먹기 좋게 김치나 반찬을 잘라 접시에 놓으면서 배어든 음식 냄새. 정작 내가 먹은 거라고는 물 한 잔 밖에 없지만 든든하게 학교에 보내 뿌듯하다. 꽉 막힌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곡예하듯 운전하여 도착하여 한숨 돌리면 바로 조회시간. 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반 아이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훑어본다. 아니나 다를까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도 오늘은 우리 반 지각자가 없다. 이쁜 것들!
요즘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여 웹툰페이지를 제작하고, 음성 녹음을 하여 동영상 편집을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조회시간에 걷은 휴대폰을 수업 시간에 나누어 주고 끝날 때쯤 제출을 해야 하지만 정신없는 나의 눈을 피해 주머니 속으로 슬쩍 가져가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도 딱 걸린 다섯 명. 전체적인 진행 설명하랴. 따라오기 힘들어하는 학생들 개인 지도하랴. 제출 안 하는 학생들 체크하랴. 슬슬 온몸에 가시가 돋치는 느낌이다.
점심시간에는 학생부에서 연락이 왔다. 얼마 전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다 걸린 우리 반 학생 둘의 생교위 날짜가 잡혔다고 한다. 서면 통지서를 받으시기 전 학부모님들께 연락을 드렸다. 불미스러운 일로 학교에 오셔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 놀라시고 다치셨을 마음을 한참 위로하다 점심시간이 끝났다. 수혈하듯 커피를 한잔 급하게 타서 후루룩 마신 후 수업에 들어간다.
중학교는 담임이 반에 상주하고 있지 않기에 우리 반 수업 분위기는 괜찮은지, 수업 분위기를 흐트러뜨려 다른 친구들을 방해하는 아이는 없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매일 한 명씩 돌아가며 <우리 반 학습 생활 일지>를 쓴다. 종례 시간에 일지를 보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해 본다. 충실한 하루를 보낸 아이들에게는 박수를 쳐주고, 시종 시간을 안 지켰거나 급식 질서를 안 지켰거나 지각을 한 학생들은 종례 후 남아서 청소를 하고 상담을 한다.
대략 이러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하루 분의 말하는 양을 초과하여 더 이상은 입을 벌리고 싶지 않은 상태랄까. 하루 종일 생활 지도하며 쉴 새 없이 하게 되는 잔소리. 그 잔소리를 들으며 찡그리던 아이들의 표정이 자꾸 아른거려 씁쓸하다. 이 씁쓸함을 툴툴 털어내기 위해 난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피곤에 찌들어 기껏 책 몇 페이지를 읽기도 버겁지만, 이 씁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동안 쌓인 감정의 노폐물을 툭툭 털어내고 개운하게 리셋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 꼭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숨 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