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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매번 무너지는 마음을 잡고.

by 마담 조셉

아이가 아픈 날의 밤은 길다.

나는 안 그래도 잔걱정이 많아 불면증이 잦은데 아이가 아픈 날은 이틀에 2-3시간 정도만 거의 기절하는 형태로 자기 때문에 가끔은 어떤 정신력으로 버티고 사는지 나 스스로도 궁금할 때가 많다.

한 번은, 둘째가 저녁을 안 먹고 바로 자고 싶다고 하길래, 안 그래도 열이 있어 심상치 않다 생각하던 차에 아이를 눕히고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아이 방에서 외마디 '꽥' 하는 소리가 나서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이미 경련을 하고 있던 적이 있었다.

엎드려서 힘들게 경련하는 아이를 들어서 옆으로 눕혀 기도를 확보하고 서야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걸 느낀다.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대신 아파 줄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 그러고 싶다.

그때부터 내 마음 안에 뭔가 트라우마란게 남은 것 같다.

경련하는 동안에는 옆에서 목소리라도 들려주며 '괜찮다고' 엄마가 꼭 옆에 있겠노라고 얘기해 주겠다 결심했다.

경련을 하는 모습은 매번 목격하는 것은 엄마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내 새끼가 숨이 꼴딱 넘어갈 것처럼 온몸이 퍼레지는 것을 보면 나는 그 상태로 마치 지옥 불구덩에 있는 거 같다.

열성 경련은 흔하디 흔하다는데 세상에 나 혼자만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거 같을까..




남편이 아프리카로 일주일 출장을 간다고 했을 때 예전과는 다르게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은 예견된 미래를 느껴서였던 걸까.

첫 며칠은 아이들이 아픈 징후도 없고, 학교 보내고 찾아오는 일 외에 거뜬할 거 같았다. 거뜬히 나 혼자라도 일주일은 두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둘째가 학교에서 결막염을 옮아와서 이틀 정도를 내가 집에서 봐야 했을 때도 그건 그저 가벼운 정도였겠거니 했다.

눈 세척을 여러 번 해도 차도가 없고 점점 심해지는 거 같아 응급 소아과를 그다음 날로 약속을 잡고 그날 밤.

감기 증세인지 목이 아픈지 둘째가 여러 번 밤에 깬다. 사실 둘째는 열성 경련이 있어 오랫동안 약물치료를 했다. 머리로 열이 오르면 아이들의 뇌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라 강제로 shut down 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아이가 만 4살이 되더니 그 횟수가 확연히 줄어 약물치료를 잠시 끊고 있었다. 둘째 때문에 여러 날 밤새본 경험이 있어 나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그렇게 꼴딱 밤을 새웠다. 첫째를 학교에 보내고 둘째와 택시를 타고 소아과로 향했다. 결막염이 있는데 겸사겸사 감기 증세도 같이 보면 좋을 거 같았다.

'목 안이 엄청 붓고 빨간데, 아이가 아무 말을 안 하던가요?'

그래. 또 감기 & 후두염이구나.. 그놈의 후두염


진료를 잘 받고서 잠이 오는 아이를 일으켜 버스를 탔다.

열은 오르는지 볼은 빨간데 몸은 연신 춥단다. 내 외투를 벗어 아이몸에 덮어줬는데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에 곯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뜨고서 표정이 멎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어 경련을 했는지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정신을 잃은 것은 확실했다. 뻣뻣한 아이들 누울 수 있게 옆으로 눕히고 입술이 파래지는 것을 바라보니 심장이 조여 온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기 전 먹었던 빵 조각을 다 게워냈다. 토사물이 기도를 막지 못하도록 손가락으로 잘 꺼낸 다음 연신 아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기사 아저씨한테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버스는 길 한가운데 멈추고 불만 섞인 승객들은 터덜터덜 버스에서 내려서 그다음 버스로 이동했다. 아이의 옷이며 내 외투며 머리카락이 토로 범벅이 됐는데도 누구 하나 티슈 한 장 건네는 이 없다. 멀리 있는 남편에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기사 아저씨가 병원에 전화를 몇 차례 하더니 차가 오려면 한 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길 한가운데 아이가 사경을 헤매는데 구급차가 한 시간이나 걸린다니.

이 놈의 프랑스는 진정 선진국인가.


둘째가 10개월 즈음, 처음으로 경련을 했을 때도 나는 아이 옆에 있었다. 응급병원에서 1박 2일, 온갖 검사를 다하고 결국은 열성 경련이니 아이가 클 때까지 기다리는 게 답이라는 허무한 얘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1박 2일 꼬박 아이 옆에 붙어 있었다. 쇼핑몰에서 갑자기 아이가 쓰러져 경련을 해서 소방차가 왔을 때도. 소아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아이가 경련을 했을 때도. 그리고 오늘처럼 버스에서도.. 아픈 아이 옆에 늘 있겠다 다짐은 한 건 나이지만 사실 너무 두려웠다.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더라도 어차피 여러 검사 끝에 열성 경련이니 약물치료를 계속하시라는 알고 있는 얘기를 할 것이 뻔해서 나는 결국 택시를 타고 아이와 집으로 돌아갔다.

토한 옷을 벗기고 대강 닦인 다음에 소파에 뉘이니 금세 잠이 든다.

그래, 너도 고될 테지.

하아.... 소파에서 쎄근쎄근 자는 아들을 보자니 오늘 하루가 너무 고되다. 눈물이 나지 않고, 한숨만 난다. 너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정신 없이 뛰어다녔더니 심장이 계속 뛴다.



다섯 살이면 열성경련을 앓던 아이들의 대부분이 징후가 호전된다는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약물 치료를 한번 끊어보기로 했다. 환절기마다 아이가 잔열이 있을 때마다 내심 가슴을 졸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자라서 인지 경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제 정말 끝인가 보다.'


크리스마스 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하루 앞둔 주말,

점심때까지만 잘 놀던 둘째가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티비를 보다가 소파에서 2시간을 내리 잤다. 열을 재보니 39도.

경련은 없겠거니 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이 옆에 자야 맘이 편할 거 같아서 저녁을 대강 먹고 9시 즈음 같이 자러 들어갔다. 한 한 시간 반쯤 잤을까. 아이는 경련을 하고 있다. 지난번과 같이 꽥 소리는 없었지만 경련을 하면서 떨리는 몸 때문에 침대가 들썩거리는 걸 깜깜한 가운데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잠이 안 오더라도 좀 누워 있어 봐.
니가 그렇게 뜬눈으로 보초를 선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


남편은 내게 용쓰지 말라고 했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쉽게 잠들 수 없을 거 같았다. 자칫 잠이 들면 이대로 어마어마한 악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왜.

이제 다 컸는데. 또 왜.

왜 또 경련을 한단 말인가.

베갯잇이 흠뻑 젖도록 나는 울었다. 뭔가 억울했다. 아니면 울분인지도. 또다시 시작된 트라우마 때문일까. 심장이 뛰는데 쪼이는 느낌이 불편하다.

눕지도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나를 보며 남편은 자기가 밤 동안에 아이와 잘 테니 한숨 자라고 했다. 밤 사이에 서너 번을 경련을 하는 것을 옆방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자려고 누웠지만 나는 오늘 잠을 못 잘 테니까. 혼자 감당할 남편이 안쓰러워 나는 여러 번 들여다보았다.

둘 다 밤을 꼴딱 새우고 초췌한 모습으로, 서로가 참 안 됐다.

응급 소아과를 가는 차 안에서 다섯 번째 경련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큰 병원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울었더니 나오는 눈물이 없다. 뭔가 독기가 서려서 울고 싶지 않다고 해야 맞는 거 같다.

여러 검사를 한 뒤에, 3시간도 안되어서 우리는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물 치료를 계속하기로 했다. 확연하게 하루에 5번 경련을 하더니 아이의 말이 조금 어눌해졌다. 우리 아가... 언제쯤이나 괜찮아지려나.


신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건지.

그리고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했더니, 아이는 괜찮아지고 개학 일주일이 지나서야 학교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일주일을 꼬박 몸살에 시달렸더니 식욕이 사라졌다. 그래. 아이를 위해서 대신 아플 수 있을 거면 나는 백번이고도 이 고생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삶이 마치 롤러코스터 같다. 집에 아픈 아이가 있으면 그 롤러코스터 코스는 더 드라마틱해지지만.

철 모르고 20대를 보냈고 서른 중반에 내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작은 존재가 태어나서 환한 기쁨도 있고 세상 꺼져가는 슬픔도 느껴보고, 무채색 같던 내 삶에 너희는 한줄기 빛 같았다.


그래도 아프지 말자. 주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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