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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의 한가운데

이대로, 그래도 괜찮다

by 마담 조셉

어떤 시인은 직업보다 생업이 더 숭고한 것이라 말했다.

생업은 목숨을 걸고 살아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직업은 나의 (미래)의 커리어와 그에 맞는 미션을 수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생업이 어찌 보면 더 본연의 뜻, 그러면서 더 생의 절박함을 담고 있어 생업이 더 숭고한 것일 거라고..

나는 그 말을 알 것도 같다.


재작년에 청바지 업사이클링으로 가방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서, 바친 2여 년의 지난 세월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앉은 재봉틀 앞에서 가방 제작에 몰두하며 여러 디자인을 만들어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그걸 시현해 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었으니까. 재봉틀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실력은 계속 늘어가고 그 일은 마치 내 천직인 거 같았다. 훗날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져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일이 힘들어진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 청바지에 박힌 실을 뜯어내느라 거북목이 되더라도 이 일은 내가 평생 할 수 있지 싶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챙겨 보내고 가방 제작을 하면서 제작 영상을 만들고, 인스타에 제품 사진을 보정해서 올리고.. 파리 내에 pop up을 하는 곳이 있으면 알아보고, 편집숍 매장에 전화하고 이메일 적고,.. 그러다가 오후 늦게 아이들을 찾으러 갈 시간이 되면 간식을 챙겨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하루라는 시간이, 가방 제작자이자 영상 편집가이자 엄마인 나에게 너무 짧았다.

무엇을 제작한다는 것은 정말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서 계속 그 생각의 구슬을 한 땀 한 땀 꿰어 이어가는 것과 같다. 도움 될 만한 영상을 찾아보고, 기록하고, 고민하고,.. 돌이켜 보면 그 2년은 내겐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가방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정원에 앉아 따끈한 커피와 멍 때리며 시작하는 하루 끝에는 내겐 오로지 가방으로만 머릿속이 가득했다. 어떻게 하면 업사이클린한 청바지로 근사한 가방을 만들 수 있을까. - 오로지 나의 목표는 그거였다.

2년 정도 버틸 자금을 미리 계산해 두고 시작한 일이지만 나의 열정과 들인 땀, 시간에 비해 페이(pay)는 늘 모자랐다. 갖시작한 업사이클링 가방 사업이 한 번에 빵 뜰 수도 없겠지만, 제작에, 마케팅에 모든 업무를 한 사람이 한다는 게 일단 사업이 크게 성장할 수 없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업사이클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생각보다 많이 부족했다. 한 땀 한 땀 만든 장인의 가방보다, 일단 Fast fashion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어쨌든 가격에 눈에 가는 게 먼저였다. 한 계절 들 가방으로 싼 가방을 거침없이 사는 게 요즘 트렌드라면 그럴 테니까...

pop up을 나가면 가방을 요리조리 찬찬히 뜯어보는 고수들이 가끔 있다. 그들은 안감이며 바느질을 보고 돈을 흥정하지 않고 그냥 가방을 사간다. '일일이 청바지를 자르고 덧대느라 정성이며 손이 많이 간 가방이다' 라며.. 그런 분들 때문에 나는 통장에 돈은 없었어도 뿌듯함으로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생활비는 늘 긴축이었다. 벌어들이는 비용은 없이 매달 주택 융자금에 식비에 통장 잔고는 점점 메말라갔다. 여행 비용도 줄이게 되고 급기야 간식을 서너 개 고르는 아이들에게 하나만 고르게 하고 나는 이대로 내 계획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어느새 하게 됐다. 한 사람의 열정이야 그는 행복하다지만 그러기에 아직 한참을 길러낼 아이들이 내겐 있었다. 언제 빵 터질지 아님 터지기라도 한다는 보장이 있기는 할까, 나는 이대로는 안될 거 같았다. 그래서 급기야 올해 연초에 나는 다시 일을 찾기 시작했고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다시 한번 한국 회사에 들어간다면 내가 장을 지지겠다 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돈을 주는데 무조건 간다 - 그게 나의 선택이었다. 일단 내 새끼들 잘 먹고 혼자 자립하기 전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열정은 마침표가 아니라 잠깐의 쉼표로 묻어두는 수밖에.


감히 말하지만 이 일은 내게 생업이다. 어느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을 하면서 새로운 배움이야 늘 있겠지만, 나의 커리어, 앞으로의 미래, 나의 자질 등을 고려하지 않고 월급 하나만 보고 결정했다. 먹고살아내기 위해 한 내 결정이다.

그래도 그 생업은 슬프지 않다.

내가 어릴 적, 아빠가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검은 봉다리 안에 순대와 짜랑짜랑 소주 두 개를 사 오던 그 소리를 기억한다. 그때도 아빠는 생업을 다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을 테고, 그때의 지금 내 나이 즈음의 아빠에게 자신의 꿈을 돌아볼, 아빠 자신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만 따끈한 순대를 맛나게 먹던 아이들의 눈망울만 기억에 남았을 테지. 나는 내 아이들에게 과자를 하나 고르라던 긴축 엄마가 아니라 과자를 마음껏 고르라 할 수 있어서, 지금은 이대로 괜찮다. 그때의 아빠 마음처럼.


지금은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재봉틀에 앞에 앉을 시간이 없다. 열정 바쳐 일하던 2년 전에 나는 지금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 그립다.

좋아하는 것 한 가지에만 몰두할 수 있던 그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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