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꾸는 일은 시간을 내어하는 일이다.
텃밭을 가꾸는 일은 시간을 내어하는 일이다.
직장인이 되고서 식물을 가꾸는 일은 부지런해야 됨을 느낀다. 황금 같은 아침시간을 쪼개어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가꾸고, 거름을 주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여름 햇살은 금방 아침부터 뜨거워지니, 아침에 아이들 먹을 걸 챙기기 전에 먼저 물을 한번 쫙 주어야 하니까 남편은 자기 아이들 먹을 것은 안 챙기고 그놈에 식물들 보고 뭐 하냐고 푸념을 내 뒤통수에다 갈기기 일쑤다. 누군들, 그럼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천천히 시간을 갖고 하면 되지 않냐 하지만 그건 뭐랄까 - 고된 노동 뒤에 위로해 줄 술 한잔이 세상의 모든 것인 거처럼 하루 종일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듯 사람들 틈에 돌돌 돌리다가 집에 오면 다른 노동이란 걸 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의자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서 와인 한잔에 하루 일과나 주저리주저리 남편에게 읊는 게 전부다. 마치 그런 넋두리라도 없다면, 내일 일을 시작할 수 없을 것처럼 일을 시작하고는 거의 매일이 그랬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하루 종일 열기운을 받은 뜨거운 대지에 바로 물을 주는 것보다는 해거름에 또는 새벽에 물을 줘야 식물이 목이 말라 물을 더 빨아들여 잘 자란다는 글을 어디서 읽고부터 아침일이 하나 더 늘었다. 평소에는 내가 화장을 잘 안 하는데 바로 챙겨 나가야 되다 보니 아침에 얼굴에 찍어 바르는 일이 하나 더 생겨서 눈썹을 그리다 말고 헐레벌떡 물을 주러 나가기 일쑤다.
여름을 맞아 꽃을 좀 가꾸어 볼 요량으로 꽃나무를 큰맘 먹고 샀지만 이제는 그걸 가꾸어 낼 시간이 없어서 물만 주고 방치해 두었더니 하얀 꽃잎을 떨구더니 중간 가지가 누런색으로 변했다. 원래도 식물을 못 키우는 똥손인데 그동안에는 정성이라도 있어서 식물들이 나를 봐주기를 한 것인지 나뭇가지 옆으로 작고 여린 잎을 내어 주었다면 지금은 얄짤이 없는지 파릇파릇하던 식물은 금방 시들었다.
'한 번만 봐줘라. 나는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지금은 나가서 벌어야 되니 나라도 어쩔 수가 없다.'
애초에 이 사단을 만들지 않으려면 식물을 사들이질 말아야 되는데 돈을 벌고 보니 그 소비마저 없으면 내게 너무 적막할 거 같았다. 원래 돈을 잘 안 쓰지만 이상하게 꽃가게에서만 내 지갑은 술술 잘 털리니, 생김새는 털털하게 생겼는데 내게 식물 키우는 취미가 있냐며 되묻는 사람들이 많다.
알록달록한 꽃을 키워내는 재미는 똥손 레벨이 벗어나야 도전해보겠지만 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모습보다 꽃잎이 시들어 떨구는 모습은 가히 너무 비참하기 때문에 과감히 시도해 볼 수가 없다. 며칠을 그 찬란한 모습을 보겠다고 사들여서 나중에 비참하게 고개를 떨군 꽃들을 보면 나는 시간을 못 내어 그들을 돌보지 못한 죄로 저절로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그나마 수요일은 재택이어서 아침부터 찍어 바르고 부랴부랴 챙겨 나갈 일도 없는 시간을 쪼개어 식물에 물을 빠르게 주어야 할 일도 없다. 그날만큼은 아침 커피 한잔 마시며 잡초도 좀 뽑고 마른 가지도 좀 뜯어내고 여러모로 정말 일주일의 중간에 쉬어가는 수요일인 셈이다.
여러모로 참 재미가 있다.
여린 가지에서 작은 잎이 나오는 신기함은.. 옅은 잎은 태양빛을 받고 자라 큰 잎으로 거듭 자라나고 간혹 가다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달래주듯 작은 꽃을 내어주면 그야말로 '이것이 전부다'라고 느낄 때가 많다.
그 기쁨을 무엇에 더 비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