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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Feb 28. 2023

아버지의 마지막 차로 벤츠를 빚내서 사드리다

두 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준비한 선물

70대 중반이신 아버지는 15년간 렉서스 ES350 세단을 운전하셨다. 작년 말에는 라디에이터가 고장 나서 수리비로 200만 원을 지출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몇 년 전부터 차를 바꾸고 싶으셨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으셨다. 2021년 나도 13년 된 현대자동차 소나타를 바꿀 기회가 되어서 바꿀 당시 아버지도 바꾸시라고 권해드렸지만… 아버지는 짜장면, 아니 신차가 싫다고 하셨어. (지오디 “어머님께” 노래 중)


내가 전기차로 바꾼 후 일 년이 지난 2022년, 현대자동차 아이오닉6 전기차가 사전계약을 받기 시작했다. 그간 우리 부부가 비말을 발사하면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린 전기차 예찬론이 통했을까. 아이오닉6 사전계약을 하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두어 달 후 취소. 전기차로의 전환은 아버지에게 맞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께서는 원하시는 게 다른 게 있었을까.


2022년 말. 우리 부부는 강원도 어느 맛있는 커피숖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가 차를 바꾸시고 싶은 건 팩트인데 전기차는 시도하고 싶어 하시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전기차를 밀어붙이지 말자고 했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하이브리드가 어떨까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하이브리드 기술은 렉서스와 현대자동차가 제일 나으니 이쪽으로 추천을 해드리면 어떨까 했다. 그리고 평생 세단만 운전하셨으니 SUV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재작년과는 달리 우리가 돈을 보태야 아버지께서 차를 사실 것 같았다.


주로 혼자 운전하시니 가장 작은 모델인 렉서스 준중형 SUV는 어떨까 생각했다. 가격도 동생하고 같이 부담하면 적절해 보였다.


출처: 동아일보

난 바로 렉서스 매장에 시승식을 예약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알려드렸지만 아버지는 시큰둥하시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셨지만 막상 아버지께서는 시승식을 해보셨다.


체급을 올려서 렉세스 중형 SUV NX, 제네시스 GV70, 볼보 XC60 시승식을 알아봤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계속해서 렉세스만 시승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제네시스라고 딱히 더 저렴하지도 않았다. 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동생에게 연락해 보니, 1) 아버지께서는 SUV가 익숙하지 않으셔서 세단이 낫겠다, 2) 오랫동안 렉서스를 운전하셨는데 굳이 또 렉세스를 운전하실지, 3) 그리고 결정적으로 과거에 벤츠를 알아보셨다가 포기하고 말았다고 했다.


동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의 본심은 이왕 마지막으로 차를 바꿀 거면 비슷한 브랜드가 내키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럼 남는 건 벤츠.  렉서스 ES와 비슷한 크기의 E 클래스 중 가장 흔한 후륜 E250을 알아봤는데 아버지께서는 전륜이나 4륜을 희망하셨다. 어디 정비소 가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4륜 E350가 낙점.


자동차를 잘 아는 동생은 내년 업그레이드 모델을 잠깐 제안했지만 1) 아버지 친구분들 중에 기다렸다가 신형 모델을 왜 안 샀냐고 할 분은 없을 테고, (2) 중고차 가격 하락 문제는 오래오래 운전하시면 아버지께서 걱정하실 문제가 아니고, (3) 무엇보다 아버지 연세를 고려하면 내년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최초 렉서스 UX에서 벤츠 E350으로 올라가면서 애초 생각했던 예산은 거의 두 배가 되었다. 경차 사려다가 롤스로이스를 사게 된다는 인터넷 농담이 현실화되었다.


나는 고민을 오래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다행히 원금을 바로 갚지 않아도 되는 생명보험 대출이 있었다. 금리도 담보대출 금리보다 2프로 정도 저렴했다. 무엇보다 형제가  합심해서 부담하기로 했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드리기로 했다. 동생이 좀 더 부담하기로 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동생 부담률 53.7%, 나 46.3%.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는 평생 자식들을 위해 무엇을 항상 사다 주셨다. 어떨 때는 너무 과해서 받는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아버지만의 자식과 손주들에 대한 사랑 표현이었다. 여전히 나는 이런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우리들이 그동안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좀 무리해서라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드리는 게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이제 아버지의 마지막 차는 곧 출고될 예정이다. 아버지께서 남은 시간 동안 건강하게 잘 운전하고 다니시면 좋겠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 형제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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