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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달립니다

따로 또 같이 하는 운동

by 미칼라책방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에 다른 건 몰라도 체육 점수는 형편없었다. 점수가 낮아서 못한 건지, 못해서 점수가 낮은 건지 그 어느 쪽이라도 중요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특히 흥미를 제일 크게 잃었던 사건은 가을 운동회 하이라이트였던 매스게임이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였으니 한 반에 60명은 족히 넘었을 시절이었다. 모두 7반이었으니 400여 명이 운동장에서 열과 오를 맞춰 매일 몇 시간씩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연습했다. 아니 연습보다는 훈련이라고 해야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교장선생님을 필두로 십수 명의 선생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우리를 감독하고 지도했다.


짜인 순서대로 착착 움직이는 동선 중에 세 명이 팀이 될 차례였다. 타다닥 뛰어 짝꿍들을 찾았다. 두 명이 마주 보고 서서 팔을 맞잡고 그 사이에 한 명이 들어간다. 두 명이 팔을 안에서 밖으로 회전하면 가운데 있던 사람이 360° 뺑그르르 돌아서 착지하고, 구경하던 선생님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가운데에서 포지션이었고 양쪽 친구들의 팔을 꽉 잡은 채로 거꾸로 처박힐까 봐 덜덜 떨면서 꺅 비명을 지르며 회전했다. 매번 무서웠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선생님들이 매번 더 싫어졌다. 그때부터 체육 시간이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그래서 체육이 싫었고 못했나 싶다.


중고등학교는 그저 그렇게 지났고, 어른이 되어서도 몸을 움직이는 건 여전히 별로였다. 그런 채로 계속 살아갈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조금 달라졌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하고 남편은 재택근무를 했다.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이 있다 보니 죽을 맛이었다. 끼니를 챙겨야 하니 멀리 외출하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탈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집안 곳곳에서 아이들과 남편의 ZOOM 카메라가 ON이 되면 운동복을 입고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처음 몇 개월은 걷기만 했도 힘들었다. 하지만 바깥 바람 쐰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컨디션은 하늘과 땅차이였다. 자칭 '방구석 러버'라며 밖에 나가길 꺼려했는데 이때는 아니었다. ZOOM 카메라 4대는 '바깥 러버'가 될 조건으로 충분했다. 그 뒤 몇 개월은 조금 뛰었고, 날이 갈수록 뛰는 구간이 늘면서 전체 10km 구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1년은 족히 넘어 걸렸다.


같은 코스를 사계절을 달리다 보니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바람의 냄새에서 생명력을 느끼며 오른발 왼발 탁탁 내놓다 보면 마주치는 러너들과의 눈인사도 자연스러워진다. 간혹 "파이팅!"이라며 응원을 건네며 스치는 러너도 있다. 등산길에서 얼마 안 남았다며 좋은 산행 하시라는 인사를 건네듯 러너들 사이에서도 동질감을 느낀다.


사람 사귀는 건 물론이거니와 낯선 사람 만나길 극히 꺼려하는 내향인들에게 달리기는 좋은 운동이라고 권하고 싶다. 혼자 뛰면 된다. 뛰다 보면 코스에 적응되고, 주변 풍경이 익숙해지면 그 풍경 안에 산책하는 이, 그와 함께 나온 반려견, 형광색 민소매를 입은 러너까지 자리를 잡는다. 나에게 처음 인사를 건넨 형광색 민소매 러너는 응원을 하며 너무 빨리 지나쳐서 설마 나에게 한 인사인가 싶었다. 그런데 다음에 지나칠 때도 똑같이 인사를 하는 걸 들으며 러너들끼리의 안녕을 묻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며칠 전에는 날이 추운데 왜 버프를 안 하고 왔냐고 하면서 볼이 얼까 봐 걱정까지 하시더라. 나는 "아, 네." 대답을 했는데 자기만의 코스를 달리느라 벌써 저기까지 가셨더라는... 하하.


최근 육상 트랙을 달리면서 달리기 수업 장면을 보았다. 코치가 다리의 높이와 상체의 각도 등을 잡아주고 옆에서 함께 뛰며 동작의 미세한 부분까지 교정해 주는 걸 한참 쳐다보았다. 검색해 보니 달리기 전문 강사가 코칭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또 달리기 동호회 활동도 다양했다. 내향인에게 적당하다고 추천하려던 달리기는 성향에 상관없이 좋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결론은 함께 하고 싶으면 운동 친구를 사귀며 뛰면 되는 것이고, 혼자 하고 싶으면 자연과 벗하며 홀로 달리면 된다. 이러나저러나 건강하면 되는 거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운동을 권하는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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